'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 공감하기 어렵다

이균성 논설위원 2024. 7. 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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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의 溫技] 사회적 효용 의심스러워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글에서 ‘정신의학은 과학이라기보다 문학에 가깝다’는 취지의 문장을 본 기억이 있다. 이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다. 정신과 마음이 아픈 이에겐 과학적 치료 못지않게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위로가 더 나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약물의 도움이 불가피한 뇌기능의 손상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다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가까운 이의 공감이 더 절실할 수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뇌의 속성과 뇌기능에 대한 발견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어떤 약물의 경우 뇌기능의 손상을 회복시키는 데 과학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런 측면에서 뇌 과학이 앞으로도 더 진보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뇌에 관한 연구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그것이 사람의 개별적인 정신과 마음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날이 다가올 것이라고는 믿기가 어렵다.

제목에 ‘게임중독’이라는 단어를 달았지만 사실은 이 표현을 별로 쓰고 싶지 않다. ‘정신병자’라는 말을 쓰기가 거북한 이유와 같다. 이런 단어가 불편한 것은 사용하는 순간 당사자를 비하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잘 못 규정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정신과 마음이 온전하다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지 다들 무엇인가에 어느 정도 빠져 있지 않나.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로고

2019년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에 등재했을 때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상태를 질병으로 보고, 질병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제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누군가의 어떤 정신적 증상이 반드시 특정한 어떤 게임 때문 만이란 걸 증명할 수 있을까. 영원히 증명될 수 없는 가설이라면 그게 과학일까.

명확성의 한계만 있는 게 아니라 형평성의 한계도 있다. WHO는 게임을 술이나 담배 혹은 마약과 비슷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게임은 그것들과 비슷한 게 아니라 영화나 만화나 SNS와 더 비슷한 게 아닌가. 몸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영화나 만화 중독에 따른 질병코드도 만들어져야 하는 건가. WHO가 그런 결정을 할 리는 만무하지 않겠나.

정신과 마음의 아픔에 대해 대응하지 말자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 대응 방식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몸과 정신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질병에 관한 한 대응이 같을 수는 없다. 몸의 증상은 그 원인을 찾고 처방을 내리는 데 비교적 과학이 잘 통하지만, 정신의 증상은 원인을 찾는 데부터 오리무중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원인을 알 수 없다면 확실한 처방 또한 있을 수 없다. 처방이 불가능하다면 증상 또한 보편화는 할 수 있을지언정 객관화는 어렵다. 정신과 마음에 관한 섣부른 진단은 치유의 방책이 아니라 낙인(烙印)의 형벌이 될 수도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정신과 마음의 치유는 과학으로 밝힐 수 없는 그 사람의 역사적 원인에 대해 같은 아픔을 가진 존재로서 한 없이 공감하는 길 말고는 찾기 어려울 거다.

게임에 관해 문외한이지만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에 등재하는 문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게임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다른 생활이 어려워 보이는 증상을 가진 사람을 모르지 않는다. 자식이 어렸을 때 그 문제로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자식을 믿지 못했던 셈이고 핑계를 찾다 게임을 지목하기도 했었다. 그 진단은 부모로서의 욕심일 뿐이지 과학이라고 말할 순 없다.

문제는 게임을 좋아했던 자식한테 있었다기보다 자식의 시간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게 하려는 부모의 욕심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삶은 별 거 아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극히 제한된 시간을 무엇인가에 쓰는 일이 인생이다. 그 시간을 어디에 쓸 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본인이다. 온전히 본인의 뜻에 따라 시간을 쓰더라도 평온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인생이다.

부모든 누구든 그 시간을 빼앗으려 한다면 존재 사이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시간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다. 괜히 게임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게임이 아니다. 가까운 이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갈등이 더 문제다.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에 등재한다고 이런 갈등이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질병코드 등재의 사회적 효용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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