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로 고통스러운 삶을 연장할지 묻는다…신간 '단식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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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발전은 인간 수명을 연장했지만 중증 질환의 위협까지는 극복하지 못했다.
대만 의사이며 대만 위생복리부타이중병원 재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비류잉(畢柳鶯)은 최근 번역 출간된 '단식 존엄사'(글항아리)에서 소뇌실조증이라는 유전병에 걸린 어머니가 단식이란 방식으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소개하며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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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의학 발전은 인간 수명을 연장했지만 중증 질환의 위협까지는 극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현대인은 생의 마지막 수년 정도를 병상에서 지내거나 삶의 질이 극도로 저하된 상태로 보내는 경우가 꽤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2022년 기대수명은 남성 79.9세, 여성 85.6세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2년가량 길었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보내는 유병 기간이 남자는 14.8년, 여자는 19.1년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 의학을 활용해 되도록 오래 사는 것이 좋은지, 혹은 인간의 존엄성이 의문시되는 상황이 되면 차라리 생을 마감하는 것이 나은지 곳곳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연명치료와 존엄사를 둘러싼 갈등이다.
대만 의사이며 대만 위생복리부타이중병원 재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비류잉(畢柳鶯)은 최근 번역 출간된 '단식 존엄사'(글항아리)에서 소뇌실조증이라는 유전병에 걸린 어머니가 단식이란 방식으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소개하며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책에 따르면 소뇌실조증에 걸리면 운동을 조절하는 소뇌가 점차 기능을 상실해 말기에는 반신불수가 되며 언어 장애의 일종인 구음장애가 생기고 음식물 섭취가 힘들어진다.
비류잉의 어머니는 요가도 잘하고 열정적으로 재활 치료에 임했지만 83세가 되자 몸을 뒤집지 못하게 됐고 음식을 먹다가 사레들리는 등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한다. 살아 있는 것이 의미를 잃고 불편과 고통을 참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그의 어머니는 단식을 통한 '자주적 존엄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단식을 택한 것에는 법적 제약이 영향을 미쳤다. 비류잉의 어머니는 자신의 상황이 안 좋아지면 생을 마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누차 당부했으나 대만에서는 이른바 조력 존엄사가 합법이 아니다. 비류잉은 일본 의사인 나카무라 진이치(中村仁一·1940∼2021)가 쓴 단행본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를 어머니에게 추천한다. 그 책은 병원에서 삽관, 호흡기 등을 사용하다 결국 사망하는 '의료사'가 아닌 '자연사'를 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연사는 굶주림과 탈수로 인한 사망이며 일반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을 생각하지만,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는 허기나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카무라는 생전에 주장한 바 있다. 그는 기아 상태일 때 뇌에서 모르핀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지고, 탈수로 인해 혈액 점도가 높아지면 의식이 몽롱해진다고 자연사의 신체 반응을 설명했다.
비류잉의 어머니는 나카무라가 쓴 책을 읽은 후 마음을 굳히고 결국 3주 동안의 점진적 단식으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한다. 비류잉은 자신의 어머니가 "평온히 눈을 감으셨다"고 전한다.
책은 반세기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집에서 임종했으나 현재는 80%가 요양기관에서 사망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상황이 의학 기술의 발전, 법적·제도적 제약, 병원의 소송 회피 경향, 죽음에 대한 대화를 기피하는 문화 등이 결합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하고 존엄사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촉구한다.
"소송을 당할까 두려운 의료기관은 환자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와상(臥牀·침상)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가족들은 나중에야 후회하곤 한다. (중략) 어머니를 모시고 행한 자주적 단식 존엄사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국민이 평소에 가족과 존엄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도록 환기하고자 했다."
채안나 옮김. 286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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