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더 더러워" 파리의 역습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 시인 2024. 7. 2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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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한용운 시인의 ‘파리’
파리조차 질색할 수밖에 없는
더 더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

파리

이 작고 더럽고 밉살스런 파리야
너는 썩은 쥐인지 만두인지 분간을 못하는 더러운 파리다.
너의 흰옷에는 검은 똥칠을 하고
검은 옷에는 흰 똥칠을 한다
너는 더위에 시달려서 자는 사람의 단꿈을 깨워놓는다.
너는 이 세상에 없어도 조금도 불가할 것이 없다.
너는 한 눈 깜짝할 새에 파리채에 피칠하는 작은 생명이다.

그렇다. 나는 적고 더럽고 밉살스런 파리요, 너는 고귀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어여쁜 여왕의 입술에 똥칠을 한다.
나는 황금을 짓밟고 탁주에 발을 씻는다.
세상에 보검이 산같이 있어도 나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다.
나는 설렁탕 집으로 궁중연회에까지 상빈(上賓)이 되어서 술도 먹고 노래도 부른다.

세상 사람은 나를 위하여 궁전도 짓고 음식도 만든다.
사람은 빈부귀천을 물론하고 파리를 위하여 생긴 것이다.
너희는 나를 더럽다고 하지마는
너희들의 마음이야말로 나보다도 더욱 더러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마음이 없는 죽은 사람을 좋아한다.

한용운의 시가 「님의 침묵」에만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에 실려 있지 않은 시 21편, 시조 21편, 한시 139수를 남겼다. 동시도 3편이 발굴됐다. '박명' '철혈미인' '죽음' 같은 장편소설도 썼다. 그의 시 중에는 현실을 풍자하는 시도 있다. 쥐, 모기, 파리를 주제로 한 시 가운데 파리를 다룬 시를 예시했다.

제1연에서 화자는 파리가 왜 더럽고 밉살스러운 곤충인지 설명한다. 이 세상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곤충이라면서 화자는 파리를 경멸한다. 제2연에서 화자가 파리로 바뀐다.

사람들이 파리를 더럽다고 하는 평가를 파리는 대체로 수긍하지만, 시가 진행될수록 파리는 자랑하기 시작한다. "황금을 짓밟고"는 황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는 다름을 나타내며, 궁중연회에서 상빈(고관대작)이 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사람보다 훨씬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의미다. 이는 파리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웃는 것이다. 화자인 파리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온갖 물건을 마음껏 사용하고 음식을 배불리 먹으니, 사람이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역습을 한다.

[사진=회동서관]

사람을 향한 파리의 비웃음이 극에 달하며 시는 끝난다. 파리가 똥밭에서 놀기 때문에 사람들은 파리를 더럽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파리보다 훨씬 더럽다는 것이 파리의 결론이다. 그래서 파리는 마음이 없는, 죽은 사람이 좋다고 말한다. 한용운은 이렇듯 파리를 등장시켜 매일 욕망 추구에 급급해하는 인간을 풍자했다.

한용운이 가장 꼴 보기 싫었던 인간은 친일파였다. 그는 그들을 비판하고 싶었지만 대놓고 욕할 수 없어서 이런 시를 썼다고 본다. 3·1운동 직후 투옥돼 3년 형을 살면서 불자들이 찾아와 사식을 넣어 드리겠다, 변호사를 써 석방운동을 하겠다는 것을 모두 거절하고 3년 형을 채웠다. 이 땅에 이런 꼿꼿한 어른이 있으면 존경받을 것이다. 한용운 시인이 입적한 지 80년이 다 돼간다. 참 대단한 시인이었다.

이승하 시인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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