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7. 2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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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쪽방촌 지역 바닥에 물을 뿌리고 있다. 필자 제공

정운덕 | 사회복지사

나는 서울특별시립 영등포쪽방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다. 상담소는 쪽방 주민들을 대상으로 정서안정지원사업, 생활안정지원사업, 신용 회복, 병원 연계 등의 활동을 한다. 쪽방이란 두평 남짓한 방을 일컫는다. 쪽방촌은 쪽방으로 이루어진 동네로 서울에 다섯 군데가 있다. 동자동(서울역), 남대문, 창신동, 돈의동, 영등포에 자리 잡고 있다. 거주민의 약 40%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고 홀몸 노인과 장애인이 약 45% 정도를 차지한다. 월세는 보증금이 없는 조건으로 25만원에서 30만원까지 각기 다르다. 쪽방에는 화장실이 없다. 공중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세면장이 없는 경우가 많아 몸을 씻으려면 쪽방 주변에 있는 이동식 목욕 차량을 이용하거나, 상담소에 설치된 샤워실을 이용해야 한다. 한미약품에서 후원하고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동행목욕탕 사업을 통해 지정된 인근 목욕탕에서 매달 2회(여름철 매달 4회) 목욕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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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쪽방상담소라고 하면 고민과 문제가 있는 주민들이 스스로 기관을 방문할 거라고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다. 직원들이 주민들을 찾아 나선다. 쪽방 주민들은 1인 가구가 많고, 노령자거나 우울증,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분들이라 건강에 취약하다. 그래서 우리 상담소 직원들은 매일 쪽방촌을 찾아 400여명의 안부를 묻는다. 상담소에 들어와 얼마 동안 상담소 간호사님을 따라 매일 두 시간 동안 쪽방 거리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이름과 집 위치를 외웠다. 하루 2만보는 기본이었다. 그렇게 한분 한분 만나며 이름을 외우고, 성향과 성격을 알게 됐다. 개인에 따라 대화하는 방식과 행동이 달라진다. 주민들과 관계 맺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삶의 한 부분이 되어준다.

쪽방은 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 바퀴벌레를 비롯해 많은 벌레가 들끓는다. 먹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집에 벌레가 생기기 시작한다. 상담소에서 위생이 좋지 않은 집을 청소하고 정리한다. 사회적 고립도 심각하다. 많은 사람이 쪽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 지역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집 문을 닫고 고립을 자처한다. 상담소는 우리동네돌봄단을 운영해 인근 주민이 쪽방 주민을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쪽방 주민이 인근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사회적 고립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다. 나는 돌봄 매니저로 이 사업을 맡고 있으며 주민들의 상태를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다.

쪽방은 화재 위험이 크다. 건물 대부분이 목재로 돼 있고 낡다 보니 전기가 합선되거나 집 안에서 담배를 피워 불이 날 때가 있다. 쪽방은 건물 간격이 워낙 좁아 한 곳에서 불이 나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상담소는 날마다 주민의 안부를 확인하며 화재 위험이 있는지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전기와 가스를 점검할 수 있게 한다.

상담소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시화전, 목공, 요리 등 자기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주민들을 프로그램에 오게 하는 것은 기획자의 첫번째 임무다. 많은 주민이 자기 삶의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나이 먹고 이거 해서 뭐 해”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패의 경험은 다시 도전하기를 두렵게 만든다. 우리에게는 삶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럿이 정답게 모여 아스팔트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가스버너에 고기를 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사이를 지나가면 내게 “고기 한점 먹고 가”라며 따뜻한 마음을 건넨다. 주민들 집을 방문할 때면 고생한다며 음료를 하나씩 주기도 한다. 쪽방에는 일곱살 된 어린아이도 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음료수를 주곤 한다. 그럼 아이는 웃으며 좋아한다. 나는 이 아이가 앞으로도 웃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일한다.

사회복지사는 환대받는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곳에 가치를 두고 있다. 주저앉은 사람을 일어날 수 있게 돕는 일. 그것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때때로 무너지곤 하지만 어둠 속 작은 촛불처럼 내 주변을 밝히고 싶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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