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언 37.5인치, 퍼터는 42인치… ‘완벽주의자만의 골프백’[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로프트 각 5도’ 특수 드라이버
337야드씩 때리는 장타 최적화
아이언 헤드 무게·길이 동일
클럽헤드도 3D 프린트로 제작
팔뚝에 그립 붙이는 ‘암록퍼터’
손목 움직임 억제로 정확도 ↑
올해 남자 프로골프 4대 메이저대회의 하나인 US오픈 우승자는 미국의 브라이슨 디섐보다. 1993년 9월생으로 만 30세인 그는 지난 2016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데뷔해 2020년 US오픈 우승을 포함, 모두 8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2022년에는 1억2500만 달러(약 1700억 원)의 거액을 받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만든 새로운 프로투어인 LIV골프로 활동 무대를 옮겨 현재까지 2승을 기록 중이다.
그 어렵다는 US오픈 코스를 두 차례나 정복한 디섐보지만, 정작 그의 골프 실력보다 더 세간의 화제를 모은 것은 그의 골프백이다. 클럽 사양과 구성이 매우 색다르기 때문이다. 드라이버만 해도 일반 양산 브랜드 제품이 아닌 장타 대회용 특수 드라이버로 유명한 회사의 제품을 쓴다. 로프트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9∼10.5도보다 훨씬 낮은 5도에 불과하다.
스윙 스피드가 빠를수록 공기저항이 커지고 스핀도 많아져 공이 많이 뜬다. 한창때 디섐보의 스윙 스피드는 무려 144마일(232㎞)까지 기록한 적이 있다. 지난 시즌 PGA투어 프로들의 평균 스윙 스피드는 115마일(185㎞)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디섐보의 드라이버 거리는 평균 337.9야드로 참가 선수 전체 평균인 310.9야드를 압도하며 1위를 기록했다.
아이언 클럽은 더 파격적이다. 일반 아이언 클럽은 클럽의 번호가 낮아질수록 길이는 0.5인치씩 길어지고 헤드의 무게도 7∼8g씩 가볍도록 제작된다. 하지만 그의 아이언은 5번부터 웨지까지 로프트만 다르고 헤드 무게와 길이가 똑같다. 모두 37.5인치로 7번 아이언 길이에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모든 클럽을 7번 아이언처럼 칠 수 있다는 말이다.
한 골프 통계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일반 골퍼가 디섐보처럼 길이가 똑같은 아이언 클럽으로 바꾸었을 때 자신감과 스윙의 일관성 향상으로 그린 적중률이 평균 40% 높아졌다고 한다.
클럽 헤드도 단조나 주조 공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3D 프린트로 제작한 것이다. 헤드 디자인 역시 독특하다. 페이스가 일반 아이언처럼 평평하지 않고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뒤쪽으로 휘어져 볼록한 모양새다. 드라이버 등 우드 클럽의 페이스를 만들 때 사용하는 ‘벌지(bulge)’라는 클럽 제작 기법이다. 공이 중심을 벗어나 맞을 때 과도하게 사이드스핀이 걸리는 것을 막아 방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퍼터는 일반적인 34∼35인치가 아닌 42인치의 긴 퍼터를 사용한다. 그립 부분을 왼쪽 팔뚝에 붙인 채 퍼팅한다고 해서 흔히 ‘암록(armlock)퍼터’라고 부르는 퍼터다. 디섐보의 퍼터는 특히 어드레스 때 퍼터가 세워진 각도를 뜻하는 라이각이 72도인 일반 퍼터보다 훨씬 가파르다. 80도로 골프 규칙에서 허용하는 최대치다. 기하학적으로 90도에 근접할수록 직선에 가까운 스트로크가 가능해 공을 똑바로 보내는 데 유리하다.
디섐보는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모든 클럽의 샤프트로 그라파이트 샤프트를 사용하는 유일한 프로골퍼다. 클럽의 그립도 일반 그립보다 훨씬 굵은 제품을 쓴다. 불필요한 손목의 움직임을 억제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대회를 앞두고는 사용할 공을 소금물에 띄운 후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치는지 확인한다. 전설적인 골퍼인 벤 호건(1912∼1997)이 처음 시작했다고 알려진 방법이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골프공으로 3m 거리의 퍼트를 하면 대략 6㎝ 정도 목표를 빗나간다. 모두 골프공 제조 기술이 조악했을 때의 얘기다. 1000분의 1인치의 정밀도로 제작되는 지금은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완벽주의자 디섐보에겐 심리적 안정을 주는 일종의 루틴이다.
디섐보는 필드 위의 과학자로 불린다. 미국 텍사스주 서던메소디스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데다 매사에 과학적 접근을 중시하고 새로운 것을 실험하는 데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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