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으나 서나 잊지 못할 당신… 내 마음의 별이 되어 빛나리[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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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는 노래를 남기고 죽음은 기억을 남긴다.
현철(1942∼2024)의 영결식(7월 18일)에서 후배 가수 박구윤은 낮은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다.
현미경, 내시경으로도 마음은 들여다볼 수 없다.
'한 송이 구름꽃을 피우기 위해 떠도는 유랑 별처럼 내 마음 별과 같이 저 하늘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리'(현철 '내 마음 별과 같이') 임종 때 가족은 병상에서 이 노래를 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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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는 노래를 남기고 죽음은 기억을 남긴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이 없어라’. 현철(1942∼2024)의 영결식(7월 18일)에서 후배 가수 박구윤은 낮은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다. 세찬 빗소리와 복받치는 울음소리가 반주를 대신했다.
나의 기억은 평양으로 향한다.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 나는 그때 그 일을 시간대별로 꼼꼼히 남겨두었다. 정확히 1999년 12월 17일 낮 12시 10분부터 22일 새벽 1시 46분까지 가수 현철은 나와 동행했다. 이제부터는 연출자가 직접 전하는 그 시절 그 얘기다. 상술하자면 12시 10분은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 출발시간이고 1시 46분은 ‘생방송 평양에 다녀왔습니다’(MBC)가 끝난 시간이다. 늦은 시간(이른 시간?)에 방송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13.5%(점유율 55%)를 기록했다.
초기에 정한 제목은 ‘남북대중음악제’였다. 북측이 ‘민족통일음악회’라고 수정 제안했고 남측은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참고로 그 당시 서로를 칭할 때 (북한 측, 남한 측이라 하지 않고) 북측, 남측으로 부르자고 합의했다. 사전답사는 11월 19일부터 27일까지 다녀왔는데 베이징에 머문 기간이 절반이었다. 북측의 입국심사 과정이 꽤 까다로웠다.
처음 광복절 특집, 추석 특집으로 기획했을 때는 조용필·양희은·주현미·김건모·최진희·조성모·엄정화 등이 섭외됐으나 몇 차례 연기되면서 출연자 명단이 수시로 바뀌었다. 날짜가 확정되지 않고 장소가 평양이다 보니 이른바 ‘바쁜’ 가수는 일정 잡기가 난감했다. 이때 ‘내는 아무 때라도 좋으니 확정되면 알려주이소’라며 손 내민 분이 현철이었다. KBS가요대상을 두 해(1989, 1990) 연거푸 수상한 인기 가수가 연말특수를 고려하지 않고 흔쾌히 마음을 열어주니 감사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현미경, 내시경으로도 마음은 들여다볼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을 대할 때 자로 재거나 위아래 살피고 다르게 대하면 그런 사람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5박 6일 유심히 살펴보고 대화를 나눈 현철은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시종일관 인자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주 감독 억수로 고생했으니 이거 먹고 힘내소” 이러면서 건네준 개성특산 인삼 한 뿌리를 나는 잊지 못한다.
봉화예술극장에서 현철은 남측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실황은 당일 오후 10시 50분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위성 발사로 남측에 전송됐다. 한복차림의 5인조 여성밴드(조선청년중앙예술선전대) 반주에 맞춰 그날 그가 불렀던 노래(‘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가 그의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가지 말라고 애원했건만 못 본 채 떠나 버린 너’. 가사를 곱씹다 보니 글자 하나(‘채’)가 유독 짙게 다가온다. 어느 자리에 올라가면 ‘못 본 채’ 가는 것만큼 ‘못 본 체’ 가는 경우도 생긴다. 죽음이란 ‘못 본 채’로 가는 것인데 살아생전 정 많던 그가 ‘못 본 체’ 하지 않고 5박 6일이나 함께해 준 것이 새삼 고맙고 감격스럽다. ‘한 송이 구름꽃을 피우기 위해 떠도는 유랑 별처럼 내 마음 별과 같이 저 하늘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리’(현철 ‘내 마음 별과 같이’) 임종 때 가족은 병상에서 이 노래를 틀었다고 한다. 밤이 되면 하늘 밭에 별이 피듯이 그가 뿌린 봉선화도 때마다 무대에서 너그러운 향기를 내뿜을 것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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