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그들만의 ‘민심 역주행’ 내전… ‘이러다 다 죽는다’

김재태 편집위원 2024. 7.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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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도 출중하고 흥미로운 장면도 많아 볼거리가 풍성한 영화는 관객들에게 매혹적이다.

줄거리 진행까지 빠르게 이뤄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러닝타임이 금세 지나간다.

우리는 그런 영화를 '킬링타임용'이라고 부른다.

요즘 치러지고 있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당대표 선거를 두고 이 '킬링타임용 영화'에 빗대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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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배우들의 연기도 출중하고 흥미로운 장면도 많아 볼거리가 풍성한 영화는 관객들에게 매혹적이다. 줄거리 진행까지 빠르게 이뤄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러닝타임이 금세 지나간다. 그런데 다 보고 나면 허무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재미는 있었는데 마음에 채워진 것이 거의 없다. 적게나마 남은 감흥이 있더라도 그저 가벼울 따름이다. 우리는 그런 영화를 '킬링타임용'이라고 부른다. 

요즘 치러지고 있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당대표 선거를 두고 이 '킬링타임용 영화'에 빗대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예상외의 전개에다 대사까지 독하고 자극적인 탓에 '흥미는 만점이지만 감동은 별로'라는 말들을 한다. 처음에는 '친윤' '찐윤' '비윤' '반윤' 등 색깔 진한 캐릭터의 대립으로 시작해 뭔가 괜찮은 클리셰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어느날 불쑥 '김건희 문자'가 투척되면서 이전투구 같은 플롯으로 방향을 틀어 뒤죽박죽이 됐다. 일부 언론에서 그 5건의 메신저 글을 아주 친절하게 알려줌으로써 가뜩이나 날이 선 구도에 기름이 들이부어졌다. 

이 글들을 소일거리 삼아 사람들은 그 메시지가 공개된 배경이 무엇인지, 그것에 담긴 내용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따지느라 분주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딱 부러지게 드러난 것은 없다. 그저 날카로운 공방만 계속될 뿐이다. 메신저로 연결된 두 당사자 중 한 명은 입을 꼭 닫고, 다른 한 명은 문자 무대응에 얽힌 맥락이 다르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놓고 대통령의 부인이 왜 굳이 다른 경로도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집권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택해 문자를 보냈을까 하는 단순한 궁금증과 함께, 글 속에 담긴 '댓글팀'의 진위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혹자는 또 글 속에 포함된 '대통령께서 지난 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셔서 맘 상하셨을 거라 생각한다'라는 문구를 콕 집어내 '아, 떠도는 소문처럼 대통령이 격노하거나 역정을 자주 낸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7월10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후보들이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동훈, 원희룡, 나경원, 윤상현 후보 ⓒ시사저널 이종현

이렇게 '명품백 사과 공방'에 '댓글팀'까지 궁중비사와 같은 은밀한 내용들이 시중에 알려지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한때 크게 회자됐던 '내부 총질'의 고약한 화약 냄새에 깊이 빠져든 형국이다. 그에 반해 다음 달에 전당대회를 치르는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크게 대비될 만큼 전개되는 스토리 자체가 단조롭다. 김두관 전 의원 등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일단 대결 구도의 구색은 갖춰졌지만 이재명 후보의 당선은 매우 유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이처럼 두 정당의 전당대회 양상은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그 중심에 자리 잡은 정서만큼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 당내 핵심 인물에 의한 지배구조가 우선 일치한다. 한쪽은 '윤심: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다른 한쪽은 '명심: 이재명 전 대표의 의중'으로 수렴되는 형태다. 국민의힘은 당대표 선거에서 '대통령과의 거리'를 따지고, 민주당은 최고위원 선거에서 '이재명 전 대표와의 거리'를 따진다. 

닮은 점은 또 있다. 전당대회에서 미래를 말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과거의 일에 대한 공방 혹은 충성 경쟁에만 몰두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지금 하는 일이 국민의 삶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다. 국민의힘의 전당대회 슬로건인 'NEXT 보수의 진보'에 나오는 그 'NEXT'라는 단어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이렇듯 국민의 삶이나 정치의 미래는 빠진 채 '윤심'과 '명심'에만 매달리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누군가의 말처럼 국가나 국민이나 '이러다 다 죽는다'. 

김재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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