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샷 추가] "짧은 양말은 아재템"...미국의 '양말 전쟁'

이권열 2024. 7. 2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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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Z세대 사이 '양말 전쟁'
'청바지 전쟁' 이어 패션 전쟁 2라운드

"이 노래 '떼창'하면 MZ세대 인정"

흔히 우리나라의 '세대 판별법'으로 사용되는 수단은 노래입니다. 우리나라엔 특정 세대가 떠올리는 대표적 노래가 있고, 그 노래를 부를 때 환기되는 공통의 정서가 있습니다.

"양말 보면 나이가 보인다"

미국에서는 '양말'을 둘러싸고 첨예한 세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양말 전쟁'(Sock War)이라는 용어를 쓰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사이 양말 전쟁이 벌어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도 이달초 "양말이 당신을 더 나이들어 보이게 만든다고? Z세대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Gen Z)가 좋아하는 양말이 확연히 다르다는 건데요, 발목이 보이지 않도록 긴 양말을 신으면 Z세대, 발목이 보이는 짧은 양말을 신으면 밀레니얼 세대라고 합니다. 헷갈리시지 않게 아래에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왼쪽이 10대와 20대들이 즐겨 신는 긴 양말, 오른쪽이 30대 이상이 착용하는 짧은 양말입니다.

세대 분기점은 1997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Z세대, 밀레니얼 세대가 뭐가 다른지 헷갈리실 것 같습니다. 일단 미국에서 통용되는 Z세대, 밀레니얼 세대의 정의부터 짚고 들어가겠습니다. 세대 구분이 결국 인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을테니 유명 연구기관이나 컨설팅 회사의 분석을 살펴봤습니다. 퓨 리서치센터는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밀레니얼 세대로 정의합니다. 또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1996년부터 201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Z세대로 명명합니다.

이런 세대 구분법을 살펴보면, 1996년 혹은 1997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10살이 된 2007년에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Z세대가 된 셈이죠. 밀레니얼 세대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라는 게 Z세대의 주장입니다.

틱톡이 불러온 파장이 결국 '양말 전쟁'으로

그런데 어쩌다 양말이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된걸까요? 논쟁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올라갑니다. 피비 파슨스라는 팟캐스터가 SNS '틱톡'에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양말로 구별할 수 있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피비 파슨스는 자신도 밀레니얼 세대라 발목이 드러난 양말을 신고있다며 '양말 인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유명 인사들의 패션이 양말 논쟁에 본격적인 불을 붙였습니다. Z세대 아이콘으로 꼽히는 가수 빌리 아일리시는 올해 1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빨간색 긴 양말'을 신었습니다. 마침 '착용샷'을 빌리 아일리시가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보이십니까? 1980년생, 밀레니얼 세대에서 조금 벗어난 제가 보기엔 살짝 난해한 패션입니다.

이어서 Z세대, 밀레니얼 세대 모두 경쟁적으로 틱톡 등 SNS에 '양말 패션'을 인증하면서 격렬한 호응과 가벼운 반발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댓글 등에 드러난 대결 양상을 보면 Z세대가 짧은 양말을 가리켜 'millennial giveaway'(우리 말로 옮기면 '밀레니얼 아재 인증템'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로 부르며 밀레니얼 세대를 놀리고, 밀레니얼 세대는 영원히 짧은 양말만 신겠다며 발끈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물론 이제 나이가 들었다며 한탄하는 밀레니얼 세대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논란은 있어도, 양말에도 세대 차이가 드러난다는 겁니다.

양말 선호도가 달라진 이유는?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양말 선호도가 어쩌다 달라졌는지 궁금해집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짧은 양말을 선호하는 문화는 미국의 기업 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0년대들어 사무실 복장 규정이 완화되면서 직장인들이 발목을 덮는 기존 양말과 정장 차림 대신 보다 편안한 복장과 짧은 양말을 착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변화가 짧은 양말이 일반적인 패션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는 겁니다. 특히 그때 성인이 된 밀레니얼 세대는 짧은 양말에 익숙해졌다는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Z세대는 어쩌다 짧은 양말 대신 긴 양말을 좋아하게 된걸까요? 일단 긴 양말을 신는 행동 자체가 밀레니얼 세대가 구축한 기존의 패션 문법을 파괴하는 행동인데, Z세대가 밀레니얼 세대와 거꾸로 행동하면서 세대 정체성을 만들어가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발목을 양말로 덮던 1990년대 패션이 Z세대에게 촌스럽다기 보다 '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언론이 양말 논쟁을 보도하면서 자주 언급하는 인물이 바로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인데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발목 위로 올라오는 긴 양말을 착용한 모습이 Z세대에게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셀럽의 패션이 30년 뒤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거죠.

'청바지 전쟁' 이어 계속되는 전쟁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사이의 패션 전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21년 5월, 워싱턴포스트는 '청바지 전쟁'(The Jean War)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즐겨입던 스키니진에 대해 Z세대가 반발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소한 현상들이긴 하지만, 세대간 사회 문화적 주도권 다툼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말 논쟁 등과 관련해서 지난달 영국의 인디펜던트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어쩌다 가장 쿨하지 않은 세대가 되었을까?"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글의 부제목은 "OK부머 대신 OK 밀레니얼"입니다. 앞으로 'OK 부머'라는 표현 대신 'OK 밀레니얼'을 더 많이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OK 부머'는 베이비부머 세대(2차대전이 끝난 뒤 태어난 세대)를 향해 젊은 세대가 'OK'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심드렁하게 맞받아치는 상황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굳이 우리 말로 옮기자면 '어르신'이 뭔가 길게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젊은 사람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며 대화를 종결시켜버리는 상황이죠. 영미권에서 젊은 세대가 베이비부머를 향해 'OK부머'라는 표현을 쓰며, 베이비부머의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이 낡았다는 것을 비하한 건데, 이제 그 비하의 표적이 밀레니얼 세대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한때 '쿨함'의 상징이었지만, Z세대의 눈에는 직장과 사회에서 기득권을 쥐고 놓지 않으려하는 기성세대일 겁니다. 이런 기성세대가 문화와 패션 영역에서마저 주도권을 내려놓지 않고 Z세대에게 뭔가 가르치려드는 상황이 탐탁치 않을 것이고요. 이런 갈등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 갈등을 긍정적이면서 역동적인 변화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미국과 한국 사회 모두 안고 있는 숙제일 것 같습니다. 이 숙제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함께 풀어나가야겠죠.

[ 이권열 기자 / lee.kwonyul@mbn.co.kr]

[아메리카 샷 추가] 에서는 현재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연수 중인 이권열 기자가 생생하고 유용한 미국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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