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아는기자들] 위즈돔의 한상우, 그레이존에서 창업하는 법

성호철 기자 2024. 7. 2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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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돔 한상우 창업자는 미국 변호사입니다. 고대 법대를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했습니다. 말하자면 1990년대 법대를 나오고, 해외 유학가서 미국 변호사를 따고, 한국 돌아와 창업했습니다. 이제 갓 50대입니다. 딱 오해하기 좋은 ‘요약’이었습니다. 해외 유학이 흔치 않은 시절이니, 흔히 ‘부잣집 도련님’이 스타트업에도 한번 기웃했나 정도죠. 주변에 인맥 좋은 지인들이 많이들 도와줬겠거니.

1990년대말 국가 부도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때 한 창업자의 집도 기울었습니다. 사시에는 몇번이나 물을 먹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미국 갔지만, ‘영어 네이브티가 아닌 미국 변호사가 미국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란 벽에 부딪쳤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주변 변호사들의 ‘영어 관련 자료’를 장당 얼마씩 대신 작성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집은 반전세로 경기도에 얻었습니다. 서울까지 출근할라치면, 몇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곳이었습니다. “출근하느라 모든 힘을 다 써버린 상태에서 겨우 서울에 오는 이런 현실은 잘못됐다”고 깨달았습니다. 6평짜리 사무실에서 창업했고, 경기도~서울 출근족을 위한 버스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절실한 꿈은 ‘책상 3개 놓으니 꽉차서, 패딩걸 옷걸이 하나 두는 것’이었습니다. 창업한게 마침 겨울이었거든요. 그런데 ‘불법’이라네요.

한상우는 올해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이 됐습니다. 솔직히 쫌아는기자들은 “한상우가 누구였더라”했습니다. 역대 의장은 성공했든, 아니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든,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쫌아는기자 1호는 올 5월 도쿄에서 처음 인사한 한 의장에게 “미안하다. 의장됐다는 뉴스를 보고는, 대체 배경이 뭐지 그랬다. 언론에도 안 나오고 사업만 한거냐”고 했습니다.

‘인간 한상우’는 누구인지, 한상우에게 물었습니다. 무례한 질문도 적지 않았지만, 한 대표는 시종일관 솔직했습니다. 배배꼰 질문에도 답은 항상 직구로만 합니다. 한 대표가 전하는 노하우는 “규제의 그레이존에서 창업하는 법’이 아닐까 합니다.

한상우 위즈돔 대표. /조선일보DB

1. 잘나가는 미국 변호사? 아니다. 되게 못나갔다.

-미국 변호사잖아요. 돈 잘 벌었을텐데, 왜 스타트업으로?

”잘나가던 미국 변호사가 창업했다는 식으로 나가는건, 되게 별로예요. 왜냐면 실제로 잘 나가지 못해서. 되게 못 나갔죠. 미국 변호사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한국 변호사 떨어져서. 제가 고시에 영 적합한 사람이 아니였어요. 고시라는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세상사에 좀 절연해야하는데, 워낙 호기심도 많은데다 이것저것 상관하고 싶은 일도 많은 사람이거든요.”

“애초에 법대도, 제대로 된 선택인지 모르겠어요. 학력고사 마지막 학번이예요. 93학번. 대학 떨어지면 전혀 다른 입시제도인 수능을 봐야했죠. 고등학교때 공부는 꽤 했는데, 그런 공포에 타협점으로 고대 법대에 갔어요. 친척 가운데 고시 패스하고 잘된 형들이 몇 명 있었거든요. 솔직히 19, 20살 때 자기 생각이 얼마나 있어서 학과를 선택했겠어요. 법대와보니 제가 고시 적합성이 없는걸 안거죠. 고시에 몇번이나 떨어졌죠.”

-사법고시 탈락자의 회피처로 미국 변호사를 선택?

“그건 아니예요. 지도 교수님이 ‘상우야, 너는 고시로는 잘될 것 같지가 않아. 내 밑에서 학문 해라. 나하고 공부하자, 연구하자.’고 말씀을 주셨어요. 학문 분야가 헌법학이었죠. 헌법학은 법률이기보단, 가치학이자 철학에 가까워요. 존경하시는 교수님의 권유였죠. 고대 법대 김선택 교수님이예요. 제가 조금이라도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거나 합리적인 면이 있다고 하면 김선택 교수님께 배운겁니다.”

-김선택 법대 교수님은 고대내에선 꽤 존경받는 분이시죠.

“당시 로스쿨 도입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이었어요. 교수님이 ‘상우야, 미국 로스쿨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로스쿨 교수를 하는건 어떤가’라고 조언해주셨죠. 미국은 사실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워낙 크니까. 당시 집이 IMF 때 쫄딱 망해 어려울 때였죠. 마침 대학원 다니면서 먹고 살려고, 참 많은 일을 해서 돈을 벌어놓은 게 있긴 했어요. 로펌에서 변호사 밑에서 일하는 리서치도 했고요. 이 돈으로 박사 학위만 받아오면, 로스쿨 교수가 되겠구나.”

-한국의 법대 학사, 미국 변호사 자격증과 미국 대학원, 당연히 로스쿨 교수 자리는 쉬웠을텐데? “예상은 빗나갔어요. 로스쿨이 예상보다 일찍 출범했습니다. 저는 박사 학위를 아직 못 받았는데, 로스쿨이 덜컥 출범했어요. 한국의 로스쿨은 출범 전에 교수 숫자가 중요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뽑았어요. 거꾸로 출범하고난 다음, 교수를 뽑을 이유가 없어진거죠. 제가 한국에 돌아왔을땐, 교수 뽑는 로스쿨이 없었어요.”

2. 수지 신봉동에 얻은 반전세... 선릉역까지 출근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다들 나처럼 힘들게 출퇴근하고 있었다.

-인생의 궤적이 완전히 틀어져버린거네요.

“생각보다 빨리 로스쿨이 열리고 교수직이 다 차면서 완전 스텝이 꼬였죠. 애도 태어났고 아빠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되니까, 아무데나 불러만 주면 취직했죠. 미국에서 한인 선배가 하는 잡지사에도 있었고, 유통회사에도 있었고. 미국 로펌의 인턴 생활도 하고. 하지만 지치기도 했고, 임금도 그냥 뻔했죠. 물론 학생 때보다는 부유하게 살았지만.”

“자괴감도 있었죠. 미국에서 닥치는 대로 불러주는 데서 일을 했지만, 실력은 없었죠. 왜냐고요? 변호사라는 직업이란게, 그 나라 언어를 네이티브로 못하면 한계가 있어요. 서른 넘어 박사학위 받으러가서, 무슨. 실력이 너무 뻔하고, 막 창피할 정도로. 솔직히 대학원 공부할 때는, 스스로 봐도, 스스로가 되게 잘했어요. 자부심이 있었고. 그런데 언어 문제 때문에 사람이 등신처럼 보이고. 한국어로 쓰면 1시간이면 되는걸, 4~5시간을 써야했고. 언어적인 한계를 서른 넘어선 극복할 수는 없구나. 그때 미국에서 서브 프라임이 터졌죠. 한국에 돌아가서 길을 찾아보자.”

-한국에선 장당 5만원짜리 영문 계약서 번역일 했다고요?

”한국에 돌아오니, 다행히 미국 유학가기 전에 리서처를 했던 로펌이 다시 받아줬어요. 부동산 분야에 강점을 가진 로펌이었는데, 여기도 서브 프라임에 휘청인 상황이었더라구요. 조직 내부도 흔들린 상황이었고. 결국 고시 출신 지인들이 가끔씩 영문 계약서 검토나 번역 같은 일감을 주면 장당 5만 원씩 받고 처리하는 일을 했죠. 그게 2009년입니다. 2009년, 장당 5만 원짜리 영문 계약서 번역하고, 의견서를 써주면서, 박사를 마무리해야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죠.”

-2009년 창업했죠. 갑자기 ‘통근버스 비즈니스’를 생각했을리는 없는데?

“미국에서 돌아와서, 가지고 있는 돈으로 집을 얻을 수 있는 데가 수지, 사실 수지에서도 가장 구석진 마을 밖에 없었죠. 반전세로 들어갔죠. 수지 신봉동에 LG자이라는 아파트죠. 어느 문중 땅을 LG가 사들여서 거의 1만 세대를 지은 아파트 단지. 수지 택지개발지구 바깥인데, 대중 교통이….”

“예컨대 죽전까지 마을버스로 25~30분 가서, 죽전역에서 지하철 타고 1시간 반 걸려서 선릉역까지 가요.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한 분은 똑같이 죽전역에서 같은 지하철을 타고, 다음에 선릉역에서 내려, 같이 3번 출구로 올라가요.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이 사람들의 데이터를 모으면, 딱 우리 동네에 맞춤형 버스를 만들 텐데. 이게 왜 안 될까?”

-노선버스는 법이 정해준 대로만 가야하지 않나요? 그 아이디어는 불법이었을텐데요?

“대기업은 통근버스를 타는데, 일반 시민들은 그냥 나라에서 만들어준 노선대로만 살아야하나. 몇번이나 환승하고 짐짝처럼 실려가야되나. 동네 사람들끼리 조기 축구회를 만드는 것처럼, 통근버스 동호회를 만들어서, 버스 한 대 빌려서 같이 타면 안되나.”

“변호사 출신이니, 먼저 법적으로 어떤 문제점이 있겠는가라고 봤죠. 법적인 문제점이 있었어요. 그때, 법적인 문제점은 극복할 수 있겠다고 자신했죠. 왜냐하면 나는 헌법 전공자니까. 이 법은 위헌이라고.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하게 살겠다는데, 교통 선택권을 가지겠다는데, 그걸 못하게 막는 행정적인 조치들은 (헌법에 안 맞는) 잘못된 법인거죠.”

3. 규제 그레이존에서 창업... 판사인 지인들과 모의 재판하며 준비. 헌법에 따르면, 소송 이길 수 있다는 판단.

-타다 논란도 있었지만,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있죠.

“대한민국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결국 노선버스와 택시예요. 버스가 정해진 노선에 따라 승객을 태우죠. 택시는 정해진 구역에서 손님을 태우죠. 전세버스는 달라요. 유일하게 전국을 사업 구역으로 해요. 서울에서 부산도, 광주도 가야하니까.”

“당시 친분 있는 법원 사람들이랑 통영에 놀러 갔는데, 전세버스 기사님하고 저녁때 술 한잔 드렸죠. 하루 종일 고생하셨으니까. 이 분이 의외의 말을 해요. 이번 달에 일 처음 나왔다고. 노선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줄을 쫙 서서, 가끔은 못타고 버스를 몇 대씩 보내기도 하는데, 같은 버스인데도 이 분은 손님이 없어 죽겠다는거죠. 노선버스에 아무리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도, 전세 사업자들은 사람을 못 태우는거죠.”

“전세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다니려면, 시장님이 면허증에 도장을 찍어시거나, 대기업의 통근버스가 아니면 안돼요. 단체로 놀러갈때, 전세버스는 ‘정기성을 띠지 않는다’는게 전제예요. 노선버스처럼 매일 같은 길을 다니지 않는다는거죠. 그럼 왜 대기업이나 공무원의 통근버스만 되나?”

-대기업이나 공무원 통근버스는 전세버스로도 가능한데, 일반 시민들은 안된다는거죠? 그게 법이라는.

“통근버스도 기종점이 있고 노선이 있으니까. 법에는 소속 구성원만 탑승하고, 구성원은 어떠한 형태의 운임비도 지불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전제예요. 굳이 얘기하자면 현대자동차 같은 경우에는 비정규직(파견직)은 통근버스 못 타고, 계열사 직원은 못타고. 왜냐면 소속 구성원만 탑승해야하니까.”

“왼쪽 바퀴 끼는 사람과 오른쪽 바퀴 끼는 사람은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르게 대접받는 얘기 많이 듣잖아요. 실제로 판교의 넥슨 통근버스에다 노선버스측이 태클을 건 적이 있어요. 사실 넥슨 빌딩 안에는 넥슨 계열사가 6~7개 있지만, 직원들은 모두가 스스로 넥슨이라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법은 무조건 1개의 계약이라야 해요. 구성원 개개인이 통근버스에 타는 계약을 하면 안되고, 오직 한 회사가 계약하고, 그 회삿돈으로만 타고 다녀야해요. 물론 회사내에선 어떻게 정산하든지와는 상관없이.”

-넥슨과 같은 큰 기업조차도 통근버스의 법 앞에선 쉽지 않았던거네요?

“전세버스는 스스로 노선을 만들 수 없고, 손님이 탈 때 개별 운임을 징수할 수 없는 거죠. 여러 개의 계약이 돼버리니까. 이 문제를 푸는 방식? 내가 수지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의 대리인으로 한 개의 계약을 만들고, 그들의 돈을 갹출해 펀드를 만들어 버스 요금을 내면 되죠. 법정은 법대로 라면 사실 하나도 못 건드려요. 1개의 계약이니. 당시 이런 아이디어가 타당하다는 대법원 판례도 나왔어요.”

“분당, 수지, 판교 등에서 강남이나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풀어주면 어떨까. 출근해서 더 업무에 몰입하고, 굳이 자가용을 나오지 않을테니, 교통도 덜 막히고, 탄소도 줄이고. 버스는 전용차로를 쭉 타고 가니, 곧바로 직장 근처로만 가면, 택시나 자가용보다 훨씬 빨라요. 당시 e-버스라는 브랜드를 내놨죠.”

-일반 주민들이 하나의 기업처럼 전세버스와 하나의 계약을 맺으면 법적 리스트는 없어진다?

“사람들을 모았죠. ‘집과 직장 주소, 이동 시간만 주세요. 나머지는 e-버스가 다 알아서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집·직장 주소와 이동 시간이 거의 일치하시는 동네 분들을 모아서 가니, 아파트 정문에서 버스를 타고, 자가용 운전해서 회사 가는 경로와 거의 똑같은 경로로 가는데, 전용차로로 갑니다. 좌회전, 우회전없이 그냥 쭉 가니, 원래 내가 운전하면 1시간 반인데 30분 만에 가요. 기름도 안 먹고, 주차 부담도 없고.”

-승객들에겐 편한 이런 방식을 왜 노선버스는 그동안 못했을까요?

“승객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기 때문이죠. 물류와 같은 관점으로 여객에 접근하는거예요. 덩어리를 모아, 거점에서 거점으로 이동시키고, 거점에서 다시 작은 지점으로 환승시키죠. 물류의 관점처럼 노선을 설계한거죠.”

-노선버스의 기본적인 발상은 ‘도어 투 도어’라는 개념이 아닌, 버스터미널(거점)과 버스터미널을 연결해준다?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각 동네 정류장이란 작은 거점으로 연결해주고? 이런 식?

“맞아요. 2009년 10월 23일, 창업했죠. 10월 23일 사업자 등록증을 받은 다음에도 계속 카페를 전전해서 일했어요. 커피값도 아깝고 노트북 파워도 자꾸 죽어요. 분당 정자동에 보증금 500만원, 월세 45만 원짜리 사무실을 얻었어요. 6평짜리 사무실. 딱 책상 3개 놓으니까 끝. 당시 소원은 여기다 패딩을 걸어놓을 옷걸이를 놓을 공간만 있었으면. 당시 겨울이니까 코트를 걸 데가 없었거든요.”

“한 1년여 간 시스템 개발하고, 사업도 정밀하게 만들고 법적인 디펜스도 쌓고. 지도 교수님이 되게 많이 도와주셨고, 연구실 출신의 판검사들이랑 모의 재판도 해봤죠. 그랬더니 우리가 이긴다, 이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죠. 2010년 10월에 내가 살던 수지에서 내가 탈 버스를 만드는 걸로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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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갑자기 시청 공무원들이 영장없이 찾아왔다

-첫 노선은 한 대표가 사는 동네의 페인포인트를 푸는 일이었죠?

-딱 시작하니, 사람들이 우르르 모이고 성공의 시작과 같은 시나리오?

-창업당시의 수익모델은요? 한달 버스 요금은 얼마 정도이고, 비용은?

-세금 보조를 받는 노선버스와의 경쟁이라. 애초에 민간이 이기기 어려운 시장 아닐까요?

-월 9만9000원은 막상 비싸게도 느껴지는 금액입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겐 멀리있는 검찰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시청 공무원들이 더 무섭죠. 영장과 무관하게 행정지도라며 와선, 말그대로 경찰처럼 조사하기도 하니까.

5. 지방 정부는 과징금도, 등록취소도 안내렸다. 다만, 협력사에 전화 한통했다... “왜 문제있는 스타트업과 거래하냐” 전화 한 통마다 거래 한 건 끊겨

-소송은 창업전에 철저히 준비했으니, 변호사 출신답게 소송으로 위기를 넘긴 건가요?

-그레이존에 진입한 한국 스타트업은 그렇게 무너지죠. 미국 스타트업은 반대로 그레이존을 혁신해 유니콘, 데카콘으로 성공하고.

-최악의 위기를 도와준 3곳은 언론, 정치인, 한국교통연구원·경기연구원의 젊은 연구자들이라고요?

-시행령이 바꾸면 이제 그레이존이 합법이 된거네요. 그후론 탄탄대로?

-노선버스가 결국 ‘신규 통근버스 면허’를 독식하고, 정작 위즈돔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6. 믿던 지인이 수십억 횡령했다... 친구의 배신은 위즈돔의 성장 기회를 앗아갔다

-처음 풀려고 했던 페인포인트는 현재로선 동탄과 경기광역 프리미엄버스만 살아남은 셈이네요.

-위즈돔의 현재 주력 비즈니스는 대기업의 통근버스입니다. 아이러니한 피버팅(pivoting)입니다.

-현재의 비즈니스 상황과 15년 스타트업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꼽아주세요.

7. 통근버스 플랫폼의 확장은 금융과 관광. 아무도 못하는 버스 대출

-통근버스 시장은 택시보다 클까요? 사실 택시 관련 스타트업은 많지만, 버스쪽은 거의 없습니다.

-택시보다 이용자가 훨씬 많은데도, 왜 스타트업들은 모두 버스로 안왔을까요?

-통근버스 플랫폼이 금융서비스? 관광서비스? 대체 어떻게 접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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