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나토 정상회의가 남긴 것 [문정인 칼럼]

한겨레 2024. 7. 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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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자유의 십자군을 자임하며 적대의 영역을 키우는 것은 현명한 일일 수 없다. 진영 간의 대결이 극단화되어 북한에 더해 중국과 러시아가 핵과 미사일로 서울을 겨냥하게 된다면, 그 대립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75주년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왼쪽 둘째)이 지난 10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 만찬 리셉션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건희 여사, 윤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워싱턴/연합뉴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7월10일부터 사흘간 미국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32개국과 인도·태평양 4개국(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정상이 참석하는 나토 정상회의가 열렸다. 그 바로 직전 미국 국제정치학계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대표적 학자 60여명이 나토 정상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공세적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시카고대의 존 미어샤이머와 하버드대의 스티븐 월트, 리버럴 국제주의학파의 주류 인사인 조지타운대 찰스 컵천과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스티븐 워스하임 박사 등이 서명한 공개서한은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공개서한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나토 조약 5조에 의거해 회원국의 참전이 불가피해지는데, 이는 유럽과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해치게 될 것이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담보로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며 잘못된 개입은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 해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재침공을 방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러시아의 의구심을 증폭시켜 전쟁을 악화시키거나 나토 내부의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끝으로 나토의 고유 목표는 회원국의 영토 방어와 안보 수호에 있으므로,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전쟁을 끝낼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매정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일반적인 국제 여론은 물론 우크라이나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간 자유의 연대, 국제법 엄수, 침략자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라는 명분을 강조해온 나토 정상들에게 냉엄한 현실과 국익에 기반한 실용적 대안을 모색하라는 강력한 주문이기도 하다. 전쟁 피로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 국민들의 일반 정서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나토 정상회의가 채택한 38개 항목의 공동성명에는 이 공개서한의 주장이 일정 부분 반영됐다. 성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군사지원 방안을 적시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으로 초청한다는 언급은 없었다. 물론 회원국에 준하는 제반 혜택을 제공하기로 하고 이들 지원 프로그램이 회원국 가입을 위한 불가역적 교량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설명했으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회원국 전원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회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또 다른 현상은 북대서양의 안보와 동북아의 안보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진영화와 북·러 밀착의 압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말해 각 지역의 안보는 최대한 분리되고 그 사이에 높은 방화벽이 서는 것이 서로에게 유리하다. 그러지 않으면 한 지역의 분쟁이 다른 지역으로 쉽게 전이되고 세계대전으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럽의 안보조차 스스로 해결하기 버거워하는 나토가 과연 동북아로 외연을 확장하는 일이 가능한가. 북한의 위협을 코앞에서 맞서고 있는 한국이 유럽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나서는 일 또한 가능할까. 혹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으로 한국이 유럽 각국에서 얻게 될 새로운 관심과 존경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사시 남북한 전면전 같은 극단적 상황이 왔을 때, 유럽 국가들이 그 존경과 관심 때문에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유의미한 전력을 적시에 한반도에 투사하려 하겠는가.

이번 정상회의 기간에 윤석열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토와 인도·태평양 지역 파트너 간의 협력은 세계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시대적 요구”라며 “무력을 통한 현상변경 시도를 옹호하는 세력들 간의 결탁은 곧 자유세계가 구축해 놓은 평화와 번영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하나로 묶은 비판이다. 우호국의 성대한 잔치에 남긴 덕담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고지도자의 모든 발언은 곧 외교적 의미를 낳는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자유의 십자군을 자임하며 적대의 영역을 키우는 것은 현명한 일일 수 없다. 진영 간의 대결이 극단화되어 북한에 더해 중국과 러시아가 핵과 미사일로 서울을 겨냥하게 된다면, 그 대립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다.

앞서 본 미 학계 60여명의 공개서한은 명확히 말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염두에 둔 실리 추구의 외교안보 정책을 지향하라는 것이다. 세계 최강국을 자임하는 미국에도 그러하다면 한국에는 훨씬 더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우리 외교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냉철한 현실 인식과 객관적 정세 평가의 중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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