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1주기, 군 사법개혁 역행한 ‘대통령실 외압 의혹’···재발 막으려면?
국방부 견제하는 군 인권 시스템도 마비
“똑같은 일 또 일어날 수 있는 상황” 개선 필요
군 사법제도는 ‘지휘관의 영향력은 줄이고, 민간의 영향력은 늘리는’ 방향으로 개혁돼왔다. 2014년 고 윤승주 일병·2021년 고 이예람 중사 사건 등 군 수사의 은폐·왜곡 의혹이 끊이지 않자, 평시만큼은 문민통제를 넓혀가야 한다는 게 사회적 흐름이 됐다. 군 내부의 부당한 입김에서 자유로운 수사·재판이 이뤄져야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2년 7월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도 이같은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 법은 군단장 등의 영향력 아래 있던 31개 1심 법원을 국방부 소속 5개 법원으로 통합하고, 2심을 민간법원에서 받게 했다. 또 사망의 원인이 된 범죄나 성폭력, 입대 전 범죄를 저지른 군인은 민간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했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 수사외압 논란은 이런 군 사법개혁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렀다는 지적을 받는다. 군 내부를 넘어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외압 의혹의 중심에 섰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 수사 기록 회수와 재조사 등의 과정에 대해 지난 1년간대통령실 관계자와 국방부 측의 통화 정황이 속속 공개되면서 의혹이 확산했다. 일선 지휘관 입김에서 벗어나려고 제도를 고쳐왔는데, 더 큰 권력의 압력 행사 의혹이 번져 법 취지가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 해석의 핵심 쟁점은 ‘지체없는 민간 이첩’ 규정이다. 군은 초동조사에서 사망 원인이 된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면 ‘지체없이’ 사건을 민간에 이첩하도록 법령에 규정돼 있다. 그러나 국방부 조사본부는 박 대령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사건을 다시 가져와 조사를 진행했다. 외압 의혹을 빚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혐의명을 명시하지 않고 사실 관계만 정리해서 이첩하는 방법도 있다’고 알렸다. 군은 그 전까지는 대부분의 이첩에서 혐의를 명시했었다. 이를 두고 국방부가 대통령실 코드에 맞춘 유권해석으로 군 사법제도 훼손을 거들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방부를 견제하는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은 박 대령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지난해 8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5일 뒤 이 전 장관과 통화한 뒤, 박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와 진정 사건을 모두 기각했다. 군인권보호관은 군 사망사건을 계기로 2022년 7월 출범한 제도다.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은 김 보호관이 오히려 군 사망자 유가족을 수사의뢰한 것을 두고 우려를 표명했다. 군판사 출신 강석민 변호사는 21일 “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가 권력 앞에서 무너졌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서는 재발 방지를 위해 군사법원법을 다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군 수사의 지휘권한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현행 법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국방부 장관 → 각 군 참모총장 →각 군 검찰단장’ 순으로 지휘할 수 있게 했다. 장관이 직접 수사단장을 지휘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국가안전보장 등의 사정이 있을 때 장관이 기소를 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자신에게 이첩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현재진행 중인 박 대령의 ‘항명’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도 맞물려 있다. 한 군 관계자는 “향후 나올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는 것과 동시에 현재 법령의 상충되거나 모호한 부분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외압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과 함께 군 수사과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군의 초동조사 때부터 민간경찰이 의무적으로 함께 참여하는 방안이 먼저 거론된다.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민간 경찰은 조사팀에서 제외되는 방식이다. 아예 초동조사부터 민간 경찰이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반대로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전제 하에 군의 수사권한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복수의 군 관계자는 “수사 외압 논란 이후 개선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제2의 수사외압 논란을 막기 위해선 전반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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