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김태곤 감독 '탈출'엔 왜 절대 '악'과 '선'이 없을까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4. 7. 2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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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김태곤 감독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김태곤 감독. CJ ENM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칸국제영화제에는 '미드나잇' 스크리닝'이라는 부문이 있다. 액션, 스릴러, 누아르, 판타지, 호러와 같은 장르 영화 중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소수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런 만큼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 타이틀이 달린 작품은 기대할 수밖에 없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공식 초청작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는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일상의 공간이 악몽의 현장으로, 친근한 존재인 개들이 위협의 대상으로 바뀌는 재난 영화를 만든 건 김태곤 감독이다. 김 감독은 '족구왕' '범죄의 여왕' '소공녀' 등 기발한 상상력과 개성 강한 캐릭터, 탄탄한 스토리의 작품들의 기획자이자 독립영화 제작사 광화문시네마의 대표로도 활약한 실력자다. '탈출'은 '굿바이 싱글'에 이은 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김 감독이 일상에서 마주한 경험에서 시작한 '탈출'은 칸 이후 관객들의 기대치에 조금이라도 더 부응할 수 있도록 다듬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과연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탈출'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CJ ENM 제공
 

칸 발판 삼아 더 높은 완성도 위해 도약하다

 
'탈출'은 2020년 10월 8일 촬영을 시작해 2021년 6월 11일 마무리한 작품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고, 다시 일 년이 지나서야 국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칸을 다녀온 후 개봉까지 김태곤 감독은 후반 작업에 몰입했다.

그는 "스크리닝 후 첫 관객 반응을 보고 나서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그걸 보완하면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관객들에게 훨씬 더 만족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이 생겼다"라고 이야기했다.

김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관객의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관객들이 재난 블록버스터에 기대하는 속도감과 긴장감, 규모감 그리고 VFX(시각특수효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몰두했다.

김 감독은 "관객들의 눈이 높아진 만큼 그 눈높이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감정이 과잉됐던 부분들 역시 관객들이 느끼기에 부담스럽지 않도록 수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관객들이 감정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보완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지금의 '탈출'이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CG 작업 과정. CJ ENM 제공
 

감독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시작한 '탈출'


붕괴 위기의 다리 위, 사람을 공격하는 실험견이라는 소재는 김태곤 감독의 경험에서 시작했다. 영화의 꿈을 이어 나갈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던 20대 후반, 목포에서 서울까지 도보 여행을 떠났다. 그때 한 동네에서 스무 마리 정도 되는 들개에게 쫓긴 기억이 '탈출' 속 사람을 공격하게 된 실험견으로 이어졌다.

"너무 무섭더라고요. 내가 물려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도 있었고요. 그 와중에 괜찮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일상적인 공간에서 아무런 위협도 느껴지지 않던 개가 공포적인 요소로 들어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는 "일상적인 공간 안에 이상한 영화적인 요소가 들어갔을 때 일상이 뒤틀리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는 장르물로 하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했다.

이후 수많은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버려진 개도 누군가의 반려견이지 않았을까?' '이 개는 왜 이렇게 됐을까?' 등의 질문을 이어간 끝에 '메시지'를 발견했다. 실험견을 소재로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다. 실험견 역시 사람으로 인한 '피해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CJ ENM 제공

실험견은 오래전부터 경비견, 경호견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카네 코르소라는 종을 기본으로 디자인했다. 실험견 CG야말로 영화의 핵심인 만큼 가장 공을 들이고, 걱정 또한 많이 한 작업이었다.

김 감독은 "에코(극 중 실험견 코드명)들이 종이 인형 같으면 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라며 "관객들이 봤을 때 위협감을 느끼고, 100% 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난 볼 수 있어' 할 정도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실험견은 극을 위해 CG로 만들어냈지만, 영화 초반 연쇄추돌사고는 실제 차량을 이용해 사실감을 살렸다. 국내 최장 거리 교량에서 벌어지는 100중 추돌 사고의 현장을 재현하기 위해 광양 컨테이너 선착장에 200m의 도로를 세트로 제작했다. 여기에 300대 이상의 차량을 파손의 정도를 달리해가며 촬영을 진행했다.

김 감독은 "개가 CG이기에 다른 요소들은 실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그간 한국에서 이렇게 한 예도 없었고, 이런 스케일감을 초반에 보여줬을 때 영화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CJ ENM 제공
 

누구나 재난 앞에 이기적일 수 있다

 
보통 재난영화는 관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응원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한 명 등장하는데, '탈출'은 어떤 특정 인물 한 명을 응원한다기보다 각 상황에 맞춰 응원 내지 이입할 수 있는 인물이 달라진다. 여기에는 김 감독의 지향점, 즉 '사람'이 존재한다.

'탈출'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책임 연구원 양 박사(김희원) 역시 특정한 상황에서는 그의 입장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개들을 군사 목적으로 개조하기 위해 잔인한 실험을 자행하는 양 박사는 분명 '악(惡)'이다. 그러나 양 박사는 원래 구조 업무를 수행하는 에코(개)를 만드는 걸 목표로 했으나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군사용으로 바꾸게 됐고, 이에 대한 죄책감을 가졌다.

"양 박사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을 거예요. 좋은 데 쓰인다고 하면 자신의 죄책감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었을 텐데 군사용으로 만든다고 하면 힘들었을 거 같아요. 그렇다고 양 박사에게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전 양 박사가 미친 과학자가 아닌 인간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 냄새 나는 박사로 그리고 싶었거든요."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컷. CJ ENM 제공

그렇기에 양 박사는 선과 악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이는 비단 양 박사뿐만이 아니다. 인명 구조와 선거 승패를 놓고 저울질하던 인물이지만 재난 상황에 놓이자 점차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차정원(이선균), 자신의 뒷주머니를 채우고 자기 목숨을 우선시 할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려는 조박(주지훈) 모두 양면성을 갖고 있다.

김 감독은 "재난 상황에서 이기심이 발동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정원은 딸에 의해 계속 자기가 원한 선택이 아닌 선택을 하게 된다. 조박 역시 자기가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누구는 절대 선, 절대 악이 아니라 재난 상황에 빠졌을 때 보이는 다양한 인간적인 면을 그리고 싶었다"라며 "그래서 각자의 이기적인 모습들이 보이다가 마지막에는 탈출이라는 목표를 갖고 하나로 뭉쳐지는 이야기로 구조를 짰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영화는 마지막에 다다라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희생된 또 하나의 생명체인 실험견 에코를 클로즈업한다. 붕괴하는 다리 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에코9은 9마리 에코의 목숨을 앗아갔던 공항대교를 바라본다.

"마지막에 에코를 등장시켰던 건 이 개 역시도 피해자라는 사실을 관객들이 잊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에요. 다리를 벗어나고자 한 사람 못지않게 개도 다리를 벗어나고자 한 중요한 캐릭터거든요. 각 캐릭터를 마지막에 짚어주듯이 에코9도 짚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에게 '저 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라는 식의 결말로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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