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걷어내고 올림픽을 응원하자[이희용의 세계시민]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1896년 4월 6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이 개막했다. 고대 올림픽이 중단된 지 1503년 만이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재현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겠다는 쿠베르탱 남작의 꿈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4년 뒤 파리대회에서 여성 출전이 허용되고 영국 식민지 인도가 처음 참가했다. 영국과 인도 혼혈 선수인 노먼 프리처드는 육상 200m와 200m 허들에서 은메달 두 개를 따내 최초의 유색인종 입상자로 기록됐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대회에서는 육상 200m와 400m 허들에 출전한 미국의 조지 포지가 흑인 최초로 동메달을 땄다. 미국체육회는 북아메리카 수족,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족, 아프리카 피그미족, 필리핀 모로스족, 일본 아이누족에게 장대오르기나 진흙탕싸움 등의 경기를 벌이게 해 관중의 구경거리로 전락시켰다.
독일의 히틀러 총통은 1936년 베를린대회를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무대로 삼으려 했다. 유대인의 출전을 막으려다 각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히틀러의 기대대로 독일은 메달 순위에서 미국을 제치고 처음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올림픽의 꽃’ 마라톤에서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식민지 청년 손기정과 남승룡이 금메달과 동메달을 거머쥐고, 미국의 흑인 선수 제시 오언스가 육상 4관왕(100m·200m·400m계주·멀리뛰기) 신화를 이뤄내 김을 빼놓았다. 히틀러는 흑인 메달리스트와 악수하지 않으려고 경기장을 일찍 떠났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흑백 차별은 그 뒤로도 올림픽을 뜨겁게 달군 쟁점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의 인종차별정책)를 펼치던 남아공은 1964년 도쿄대회부터 1988년 서울대회까지 참가를 금지당했다.
멕시코대회가 열린 1968년은 흑인 지도자 마틴 루서 킹이 피살된 해였다. 육상 200m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미국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시상대에서 검은 장갑을 낀 한쪽 손을 번쩍 치켜들어 침묵시위를 벌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정신을 위반했다며 곧바로 선수촌에서 쫓아냈고 미국 육상연맹도 이들을 제명했다. 호주의 백인 은메달리스트 피터 노먼도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배지를 함께 가슴에 달고 공감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 선수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2000년 시드니대회는 탈레반 정권의 여성 억압정책을 문제 삼아 아프가니스탄의 참가를 금지했다. 이 대회에서 호주 원주민(애보리진) 캐시 프리먼은 여자 육상 400m에서 우승한 뒤 애보리진 깃발을 들고 경기장을 돌며 원주민 차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나흘 뒤 개막할 파리올림픽의 대한민국 대표단에는 귀화 선수와 다문화가정 선수도 포함돼 있다. 중국에서 귀화한 전지희와 이은혜(이상 여자탁구),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허미미(여자유도), 탁구 스타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아들 안병훈(골프)이다. 이들도 당당한 대한민국의 일원이고 자랑스러운 태극 전사다.
국가대항전 성격을 띠는 스포츠대회에서 자국 선수를 응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과도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는 곤란하다. 갈등과 혐오를 부르기 때문이다. 편견을 걷어내고 차분한 마음으로 올림픽 대표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고 멋진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자.
포럼사무국 (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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