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공포의 균형’ 잡기[한반도24시]
북러 동맹조약 맺자…한미 ‘핵 기반 동맹’ 맞대응
북한의 대남 핵사용 공언…韓독자 핵개발 추진 목소리
대화를 통한 평화 만들기 포기해선 안돼
유럽에서 많은 피를 흘린 미국이 극동의 일본군을 진압하려면 많은 희생이 따를 것으로 보고 소련군의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한반도 분단의 단초를 제공했다. 일본 패망 이후 소련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지역에 관한 관할권을 요구하다가 미국이 거절하자 한반도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일본군 무장해제라는 ‘군사적 편의주의’에 따라 미국이 소련군을 끌어들여 한반도는 분단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소련은 연합군 측이었고 냉전이 진행되기 전이라 소련군을 불러들인 미국에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전적으로 물을 수 없다. 다만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핵무기의 위력을 잘 파악하고 현명한 정책판단을 하였다면, 한반도 운명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분단 이후 곧바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한국전쟁을 치름으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갈래의 적대관계가 형성됐다. 남북 사이의 불신은 깊어지고 정전협정에 기초한 질서가 ‘분단체제’로 굳어졌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지 못하고 북미 적대관계를 지속함으로써 북한은 핵개발의 동기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찾고자 했다. 한국이 소련(러시아), 중국과 수교한 데 비해 북한은 미국, 일본과 적대관계를 해소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중이 전략경쟁을 본격화하고 있어 한반도 문제는 미중 갈등의 하위체제로 편입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핵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중단된 것도 미중 갈등과 관련이 있다.
한반도 비핵화 노력이 실패하고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어 한반도에서의 ‘공포의 균형’ 잡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미가 위싱턴선언을 통해서 핵협의그룹(NCG)을 발족시켜 핵억제력의 실행력을 높이자, 북한이 러시아와 동맹조약을 맺고 ‘공포의 균형’을 잡으려 한다. 이에 맞서 한미가 ‘핵 공동지침’을 문서화하고 한미동맹을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펴며 ‘영토평정’을 국시로 내세우고 대남 핵사용을 공언하고 있어, 한국이 독자적인 핵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독자핵개발 요구는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란 전제 아래 경제 등 여타부문에서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을 괴멸시킬 수 있는 독자 핵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주한미군 철수 등 예기치 못한 정세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조건에서 북한의 대남 핵사용은 자멸 행위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핵무력 고도화를 추진하면서 러시아의 핵우산까지 추가하려는 데는 미국 전략자산의 위력을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한미의 ‘김정은 정권 종말론’에 맞서 핵사용 교리를 법령화하고 강 대 강 대응과 조건부 핵사용 의지를 밝히고 있다. 북한은 핵무력의 제1사명은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며, 공세적 차원의 핵무력의 제2사명은 “전쟁억제가 실패하는 경우 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을 격퇴하고 전쟁의 결정적 승리를 달성하기 위한 작전적 사명을 수행한다”(최고인민회의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 2022년 9월 8일)고 밝혔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장기 중단된 가운데 김정은 정권 종말론과 대한민국 괴멸론이 충돌할 경우 핵사용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은 대화 없이 공포의 균형 잡기 경쟁에 집중하지만 대화를 통한 평화 만들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공포의 균형 이후 새로운 평화 만들기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윤정훈 (yunrigh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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