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선물로 ‘아기쌀’ 주고 쌀가게선 즉석도정…日 ‘맛있는 쌀밥’에 진심

서륜 기자 2024. 7.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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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쌀산업 현장을 가다] (하) 너나없는 ''쌀시장 지키기''
반찬 없는 식문화…밥맛 중시
식당선 오늘 제공 쌀품종 안내
지역 쌀가게·마트선 즉석 도정
쌀, 출산선물·답례품으로 인기
2010년대 최고급쌀 잇단 출시
도쿄역 인근 갤러리 운영 기업도
일본 농기계업체 ‘얀마’가 도쿄역 인근에서 운영하는 쌀 갤러리에 전시한 쌀 조형물.

쌀은 한국인의 주식이자 민족문화의 근간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본인의 쌀 사랑도 우리 못지않다. 윤석열 대통령도 즐겨 봤다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맛있는 쌀밥만 있으면 (반찬은 무엇이어도) 상관 없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일본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쌀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 있는 쌀가게 ‘요시미야’는 갓난아기의 몸무게와 똑같은 무게의 쌀을 예쁘게 포장한 일명 ‘아기쌀’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쌀 자루에 아기 얼굴 사진을 인쇄했고, 모양도 담요에 싸인 아기처럼 보이도록 형상화했다.

일본은 결혼이나 출산할 때 선물이나 축의금을 받으면 그 금액의 절반에 상응하는 선물로 답례하는 것이 전통인데, 답례품으로 쌀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향납세(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도 쌀을 많이 선택해 고향납세 플랫폼에서 ‘쌀특집’이 진행되기도 한다.

‘오늘 제공하는 메뉴에 쓴 쌀 품종은 고시히카리’라는 식의 안내문을 출입문 앞에 내건 식당 모습 또한 흔히 볼 수 있다. 안내문에 적힌 쌀 품종을 식당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손님도 있다. 그만큼 밥맛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이는 일본 특유의 식문화에서 기인한다. 여러 반찬을 차려 식사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인은 별다른 반찬 없이 밥을 먹는다. 식당에서 규동(쇠고기덮밥)을 주문하면 말 그대로 밥 위에 쇠고기만 얹어준다. 거기에 미소시루(된장국) 정도가 같이 나온다. 한그릇에 담긴 밥양도 많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초밥이나 주먹밥은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일본인들은 ‘맛있는 쌀밥’을 먹기 위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성을 쏟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진 ‘쌀가게’가 지역마다 여전히 성업을 이루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쌀가게에서는 쌀을 현미 상태로 진열하는데, 손님이 오면 즉석에서 도정해 판매한다. JA(일본농협)가 운영하는 마트에서도 즉석 도정기를 쉽게 볼 수 있다. 판매 단위는 3∼5㎏의 소량 거래가 일반적이다. 갓 도정한 신선한 쌀을 조금씩 구입해서 먹고 쌀이 떨어지면 다시 산다. 이미 도정된 백미를 10∼20㎏씩 사 며칠을 먹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도쿄도 기타구(北区)에 있는 쌀가게 ‘시노하라’의 점주는 “쌀을 항상 (상하기 쉬운) 생선처럼 세심하게 관리한다”고 말했다.

일본인의 이러한 쌀 사랑은 ‘고시히카리’ 등 세계적인 고품질 쌀 품종을 숱하게 개발해낸 원동력이 됐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0년대 중반에는 최고급 쌀을 개발하기 위한 경쟁이 불붙기도 했다.

아오모리현은 2015년 ‘세이텐노헤키레키(청천의 벽력)’라는 최고급 품종을 선보여 일본곡물검정협회에서 특A 등급을 취득했다. 당시 소매가격은 5㎏에 2500엔(19일 기준 2만2084원)에 달했다.

이와테현은 10년에 걸쳐 개발한 ‘긴가노시즈쿠(은하의 물방울)’를 2016년 가을 도쿄 중심부의 한 백화점에서 2㎏당 1340엔(19일 기준 1만1837원)에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최고급을 자처하는 품종이 난립하면서 시장에 안착하는 것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 있는 쌀가게 ‘요시미야’가 내놓은 ‘아기쌀’. 도쿄=서륜 기자, 요시미야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일본의 쌀 사랑은 기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농민에게도 익숙한 일본 농기계업체 ‘얀마’는 번화가인 도쿄역 인근에서 ‘얀마 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손으로 농사짓던 시절부터 전면 기계화가 완성된 현재까지 쌀농사의 발전 과정과 현황을 애니메이션 등으로 설명한다.

이토록 쌀에 ‘진심’인 일본인도 쌀 소비를 줄이고 있다. 1인당 쌀 소비량이 2021년 51.4㎏으로 전년(50.8㎏)에 비해 0.6㎏ 늘어 소비 감소세가 멈춘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2022년 50.9㎏으로 다시 줄었다.

다만 최근에는 소비 감소의 끝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히라카타 유우사쿠 일본 농림수산성 농산국장은 6월4일 도쿄에서 열린 쌀 집하단체 회의에 참석해 “쌀 소비 감소 추세가 멈추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같은 전망이 현실화한다면 일본 정부가 쌀 적정 생산량을 산출할 때 소비량 예측이 보다 수월해지는 등 일본 쌀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도쿄(일본) = 서륜 기자, 김용수·박민철 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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