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나의 농기계가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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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번기에 논에서 굉음을 내며 한창 열심히 일을 해야 할 농기계가 멈췄다.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어려운 농가는 농기계가 고장나 고치기라도 하면 허리가 휠 지경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논에 나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벌면 뭐해요. 고스란히 농기계 사고 수리하는 데 다 써버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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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번기에 논에서 굉음을 내며 한창 열심히 일을 해야 할 농기계가 멈췄다. 아니 ‘붙잡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경기 여주에서 벼농사를 짓는다는 금모씨(67)의 이야기다. 사연은 이렇다.
5월초, 농기계를 구매했던 대리점에 전진과 후진에 문제가 생긴 트랙터를 맡겼는데 약속된 수리 기간을 훌쩍 넘겨 터무니없는 금액이 적힌 견적서 한장이 날아왔다. 금씨와 대리점주 사이에 다툼이 생겼고 대리점주는 타협의 여지 없이 “견적서상 금액을 입금해주지 않으면 농기계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금씨는 자기 트랙터 대신 인근 농협에서 농기계를 빌려야 했다. 마력이 큰 것이라 며칠 새 500만원 가까운 임차료가 발생했다. 6월 달력이 7월로 바뀌었는데도 농기계는 여전히 ‘억류’돼 있다.
그간 해당 대리점 농기계 수리를 맡기며 금씨가 받은 견적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가장 큰 문제는 공임비였다. 몇시간이 걸렸고, 몇명이 투입됐고, 어떤 작업을 수행했는지와 같은 정보는 생략된 채 단가와 수량을 단순히 곱해 240만원이라는 결과값만 쓰여 있었다.
대리점을 찾아 반론을 들었다. 대리점주는 “농기계를 고칠 사람이 없다. 겨우 기술자를 모셔 왔는데 엔지니어로서 충분한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않겠나. 적정한 공임비를 책정했는데 폭리라며 무조건 깎아달라고 하니 기가 차다”고 항변했다.
농사짓는 사람이 줄자 농기계 대리점 수도 줄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리점은 독점의 지위를 이용해 수리비와 부품값을 올리는 형국이다. 비싼 농기계는 수억원씩 한다.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어려운 농가는 농기계가 고장나 고치기라도 하면 허리가 휠 지경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논에 나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벌면 뭐해요. 고스란히 농기계 사고 수리하는 데 다 써버리는데….”
대화를 나누던 도중 고개를 떨구던 금씨 모습에 기자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부며 농업계며 요즘 ‘스마트농업’을 외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농민은 정작 농기계 고치는 데도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으니 과연 ‘스마트’란 말이 얼마나 와닿을까.
농업의 미래는 화려한 수사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본을 탄탄히 다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제라도 정부가 앞장서 농기계를 잘 다루는 기술자를 육성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기계값·수리비·부품값이 치솟는 잘못된 시장질서를 바로잡아줘야 한다.
이문수 전국사회부 차장 moon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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