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올림픽은 과학인데… 전신수영복은 왜 무대에서 사라졌나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2024. 7.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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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저항 줄이며 혁신… 신기록 쏟아지자 세계수영연맹이 금지
와플기에 우레탄 부어 밑창 덧댄 운동화, 접지력·안전성 강화
올림픽은 과학과 인간 본질 드러내는 이벤트… 파리를 기대한다
일러스트=이철원

이번 주 파리 올림픽이 시작된다. 스포츠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수단이다. 일본의 운동화 브랜드 아식스(ASICS)가 라틴어로 “Anima Sana In Corpore Sano”, 즉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영혼이 깃든다”라는 의미인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스포츠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극복하며 발달한 인체 과학 덕분이었고, 이는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어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인류는 자연을 이용하는 과학을 운동 시합에 담기도 했다. 때로는 시합 규칙에도 과학 원리가 이용되었다. 이처럼 스포츠 과학에는 인류 문명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초기 인류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힘이 약했다. 이랬던 인류의 조상이 경쟁자를 물리친 것은 던지기였다. 2013년 과학 전문지 네이처는 던지기는 인간만이 가진 독보적인 능력이고, 이는 직립보행으로 발달한 독특한 근골격으로 가능했다는 연구를 실었다. 인간은 돌이나 창을 무기로 던지며 비로소 동물과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탄도학(ballistics)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βάλλειν(ballein)’이 던지다는 뜻이다. 이미 고대 그리스 올림픽 때부터 투창과 투원반 등 던지기 시합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오늘날 탄도학이 다루는 포탄이나 우주발사체 훨씬 이전부터 던지기는 인류 문명의 기초였다.

던지기에서 출발한 인류의 무기는 활과 총으로 확장됐고, 올림픽은 이를 양궁이나 사격 종목으로 담아내고 있다. 화살과 총탄이 목표물에 정확히 적중하기 위해서 다시 과학이 필요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화살대의 탄성에 의해 좌우로 흔들리며 날아가는데, 이를 ‘궁수의 역설(archer’s paradox)’이라고 부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화살깃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화살깃은 화살 몸통에 회전을 주어 날아가는 화살의 직진성을 증가시킨다. 같은 원리가 사격에도 적용됐다. 총신 내부에 나사 모양으로 강선(riffle)을 새긴 것이다. 총알은 강선의 홈을 따라 회전하며 직진성을 확보한다.

인류는 대양을 항해하면서 또 다른 어려움을 맞았다. 배가 일으키는 파도가 새로운 형태의 저항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를 조파저항(Wave Making Resistance)이라고 부른다. 물 위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특히 수영은 인류가 과학으로 저항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우선 앞선 선수가 만든 파도가 옆 레인에 미치지 않게 하려고 수영장 레인을 구성하는 원형의 플라스틱 디스크는 뱅글뱅글 돌아가게 설계되어 있다. 디스크가 돌면서 파도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파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기에 뒤따르는 선수는 불리하다. 예선 기록이 우수한 선수가 유리하도록 중심 레인에 배치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조파저항을 근본적으로 피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파도는 표면에서 만들어지므로 완전히 물속으로 들어가 잠영(潛泳)하면 조파저항이 없어진다. 이를 간파한 선수들은 폐활량으로 잠영을 확장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일본 선수 스즈키 다이치가 무려 30m를 잠영으로 헤엄쳐 우승하자 국제수영연맹은 잠영의 길이를 15m로 제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파저항 대신 마찰저항을 줄이는 과학이 시작됐다. 1994년 서울대 최해천 교수는 상어 피부의 돌기가 마찰저항을 감소시키는 원리를 찾아냈다. 이를 응용해 개발된 것이 전신수영복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전신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이 메달을 휩쓸었다. 이후 다양한 전신수영복 기술이 더해지며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3개의 신기록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이에 2010년 세계수영연맹은 전신수영복 착용을 금지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49개의 금메달이 걸린 수영 다음으로 금메달이 많은 종목은 48개의 육상이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에서 맨발로 우승했던 아베베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신발을 신고 우승하자 큰 화제가 되었다. 그가 착용한 것은 일본 운동화 오니쓰카. 당시 미국 오리건 주립대 육상 코치 빌 바워만은 오니츠카를 수입해 개량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고민은 제자들의 안전이었다. 육상 트랙과의 접지력을 올리기 위해 장착된 강철 스파이크는 수시로 부상을 일으켰고, 선수 수명도 단축됐다.

혁신은 의외의 기계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집에서 와플을 먹던 바워만은 와플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아내가 사용하던 와플 기계에 우레탄을 부었다. 그리고 이를 운동화 밑창에 붙여서 육상화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나이키다. 나중에 오니쓰카는 아식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올림픽의 매력은 인간이 가진 모든 힘과 감각으로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점일 것이다. 자동차는 이미 인간의 달리기를 능가했지만, 여전히 육상은 매력적일 뿐 아니라 아직 인간만큼의 에너지 효율로 이동하는 기계는 없다. 어쩌면 다가오는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에 올림픽은 인간의 본질을 더욱 잘 드러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인공지능은 선수 보호를 위해 와플 기계에 우레탄을 부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번 올림픽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인공지능이 판정에 도입돼 인간과 공존할 것이다. 이처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질 선수들의 치열한 승부에 다양한 과학의 모습을 더해 본다면 이번 올림픽은 훨씬 더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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