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한동훈은 ‘주인공’이 될까, ‘도구’가 될까
尹과 ‘숙명적 차별화’는 불가피할 듯
미래 권력 욕심내는 순간 파국 맞을 수도
내가 ‘원톱’이어야 한다는 생각 떨쳐내야
국민의힘 새 대표 선출이 1차 투표에서 끝날지 결선 투표까지 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한동훈이냐 아니냐의 판세임은 분명하다. 이 추세에 변화가 없다면 51세의 한동훈이 쟁쟁한 선배 정치인들을 제치고 정당 생활 7개월 만에 집권 여당의 선출직 대표 자리에 오르는 장면을 볼 수도 있겠다.
보수 정당의 뿌리가 단단하지 못하고 정체성도 허약하니 내부에서 사람을 키우지 못하고 위기에 몰릴 때마다 늘 외부로 눈을 돌리는 게 체질화돼 있는 국민의힘 모습이 참 딱하지만 논외로 치자. 별의별 진흙탕 싸움이나 네거티브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108명의 의원들도 한동훈 저지 그룹, 한동훈 쪽으로 발 빠르게 변신한 그룹, 대세 눈치 보기 그룹, 팔짱 그룹 등으로 나뉘어 각자 보신(保身)과 득세(得勢)의 기회를 탐색하느라 분주했을 뿐이다.
흥미로운 건 ‘어대한’ 기류는 시종일관 유지됐다는 점이다. 다른 3명의 당권 주자들도 각자의 스토리가 있고 나름의 존재감을 갖고 있는 중진들이지만 흐름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던 이유는 뭘까. TV토론을 지켜본 몇몇 정치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한동훈은 초보 정치인임에도 1 대 3의 불리한 구도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는 모습, 속도감 있는 언변 등으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반면 국가 지도자감인가 하는 점에선 여전히 유보적 반응도 적지 않다.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듯한 ‘톤 앤드 매너’는 그렇다 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보수의 비전이 뭔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원 대상이든 일반인 대상이든 5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는 건 한마디로 ‘한동훈 도구론’이 먹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성 정치인보다는 젊고 새로운 인물을 통해 당의 체질을 바꿔 보자는 변화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는 것이다. 아직 자질과 덕목이 검증되진 않았지만 ‘한동훈의 시간’을 한번 만들어 주자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당 일각에서 ‘어차피’ 한동훈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동훈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이젠 ‘전대 그 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권력의 시간을 모래시계에 비유하곤 하는데, 시간의 흐름을 꽁꽁 묶을 방법은 없다. 정권마다 위 그릇에서 아래 그릇으로 흘러내리는 속도가 다를 뿐이다. 이 정권의 모래시계는 훨씬 빨리 돌아간다. 전대를 통해 확인된 사실 하나는 윤심(尹心)은 도통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니, 윤심은 이제 관심의 대상도 아닌 듯하다.
전대가 이대로 끝난다고 해서 모래시계의 아래 그릇은 한동훈 차지라고 단언할 순 없다. 오히려 당권을 쥔다면 정치력을 적나라하게 검증받는 혹독한 시기를 맞을 수 있다. 여전히 모래를 꽉 움켜쥐려는 용산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가 관건이다. 현재 권력은 아직 임기가 절반 이상 남아 있다. 극심한 내홍에 휘말리며 대통령 탈당, 분당, 탄핵 시나리오까지 나오지만 윤석열의 영역과 한동훈의 영역이 적당한 선에서 봉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월동주건 동상이몽이건 그게 양쪽이 다 사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세계는 때로 합리적 타산이나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격정적 ‘온난전선’과 한동훈의 차가운 ‘한랭전선’이 부딪치며 언제 어디서 폭우가 쏟아질지 모를 일이다. 특히 한 후보가 ‘여사 문자’ 공개 국면에서 국정농단, 당무개입 등의 용어까지 쓰며 저항한 건 윤-한 갈등의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 부인의 ‘농단’ ‘개입’ 논란은 치명적 이슈다. 김 여사 문제는 한동훈으로선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과제가 될 것이다.
여사 문제가 보수 위기의 핵심 고리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위기의 전부는 아니다. 그 점에서 국민의힘의 차기 지도부는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일반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고 보수 정당의 본질적 가치를 새로 정립할지에 대한 묵직한 비전을 내놔야 한다. 한쪽은 미래 권력만 꿈꾸고 다른 쪽은 현재 권력 유지에만 급급하며 권력 투쟁만 벌이다간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용산은 별로 바뀔 기미가 없다. 당이 바뀔 때다. 한동훈이든, 막판 뒤집기로 다른 당권 주자가 당선이 되든 대권 야심이 아닌 보수 재건의 도구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우선돼야 한다. 궁금하다. 정작 ‘원톱’ 주인공의 삶을 살아온 한동훈은 ‘도구’가 될 자세가 돼 있을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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