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대학가를 덮친 탐욕 신촌 전세사기

박진수 2024. 7. 2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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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 씨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 학교에서 신대방역 근처까지 2시간 반 하굣길을 매일 걸어 다녔습니다.
만져본 적도 없는 대출금 1억 원과 이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신촌역으로 쭉 걸어서 광흥창 지나고, 국회의사당 지나서, 대방으로 가서 보라매공원 지나서 이렇게 오면 여기가 신대방이에요. 그 경로로 이렇게 항상 걸어왔었어요. 연구실 친한 오빠들, 언니들이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이 정도였는데.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연구실에 있지도 못하고 몇 번은. 이거라도 아껴서 밥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걸어 다녔어요.

솔 씨는 3년 전, 대학원에 진학하며 신촌에 머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2천5백만 원, 5평짜리 원룸이었습니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23살 학생이 대출 없이 구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1억 원은 제가 카카오뱅크 대출을 했었고, 나머지 2,500만 원은 저희 어머니가 제가 박사가 끝났을 때 외국에서 잠시 연수를 하게 되면 그때 쓰라고 모아두신 비용이었어요.

계약이 끝나갈 때쯤, 문 앞에 붙어 있던 경매 통보. 평온했던 솔 씨의 일상은 뒤틀렸습니다. 집주인은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최근에 사업이 많이 어려워져서 그래서 지금 은행 빚 상환을 못해서 그렇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제가 연락할 때마다 다음 주엔 자금이 들어온다. 그다음 주에 자금이 들어온다.

계약 기간이 끝난 지 10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이젠 단수, 경매 통보를 받아보는 건 예삿일입니다. 견디다 못해 일단 짐은 놔둔 채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왔습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진짜 못 살겠다, 여기 살다 정신병 걸리겠다’였어요. 집도 점점 무너지고, 아래는, 1층은 잠기고 있고. 제 방에 곰팡이 피고 있어서, 모든 옷에, 물건들에 다 냄새가 배고 있고. 화장실도 벽이 무너지고 있고.


솔 씨가 전세로 들어온 연희동 주택의 감정가는 29억 원 남짓. 하지만 기존에 잡혀 있는 근저당 액수만 23억 7천만 원입니다. 거기에 보증금을 못 돌려받은 세입자들이 임차권 등기를 설정한 금액만 10억 원이 넘습니다. 그마저도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과 임차권 등기 설정을 안 한 세입자의 보증금은 빠진 액수입니다. 주택이 팔려도 솔 씨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연희동엔 이 씨처럼 임대인 최 모 씨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80명 정도 더 있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2030 청년들입니다.


26살 이정은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은 씨는 24살이던 2022년 2월, 연희동의 다섯 평짜리 원룸에 전세로 들어왔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3백만 원, 그중 9,270만 원이 대출이었습니다.

이정은/26살 어린이집 교사
제가 계산을 해봤거든요. 지금 가지고 있는 월급에서 백만 원을 만약에 이렇게 (저축)한다고 하면, 10년. 10년, 약 9년에서 10년. 근데 또 그 외에 추가적으로 이자는 또 이자대로 내고서. 그렇게 더 생각하니까 이게 더 너무 막막한 거예요.

보증금을 당연히 돌려받을 거라 믿었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려고 가계약금까지 넣었습니다.
이정은/26살 어린이집 교사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이었어요. 제가…죄송해요. 조금 더 큰 집으로 가고 싶었던 마음에 이제 그랬는데, 네 그렇게 되지 못했죠.


결혼도 미룰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정은/26살 어린이집 교사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조금 더 돈을 모아서 이렇게 하자고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당장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임대인 최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최 씨는 취재진과 만나기로 한 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몇 년 전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 임차인들의 돈으로 건물을 지어 자산을 불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강훈/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다수의 주택을 짓고, 거기에 토지 대금은 은행에서 이제 저당 대출로 받고, 그다음에 건축비는 임차인들한테서 받아서. 처음엔 다른 데서 자기가 자금을 동원했을지라도 결국은 그걸 다 임차인들한테서 받아 정리하는 방식으로 해서 본인 돈 안 들어가는 방식으로 그렇게 여러 채 건물을 지었던 사례 같습니다.


당시 건축 업계에선 흔히 행해지던 방식. 하지만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김관기/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전세사기사건 피해자 지원 TF 위원장
주택 하나가 값이 뚝 떨어지면 그거 팔아도 안 되니까, 다른 데에서 마련해서 줄 수도 없고. 그 약속을 못 지킨 거죠. 주머니가 깊지 않은 사람들이 갭 투자로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사업의 위험을 부담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임대인으로 나선 게 본질적인 문제죠.

취약한 구조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청년들이 희생양이 되어버렸습니다.
지수/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이 근방의 전세 평균이 2억 원 정도거든요. 근데 1억 5천, 1억 1천, 이 정도의 전세를 구하신 건 정말 저렴한 집 찾으신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정말 어린 연령대의 청년들이 저렴한 집을 찾다가 전세 사기를 당한 상황인 거죠.

경찰은 지난 4월 임대인 최 씨를 사기 혐의로 송치했습니다.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에 따라 다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범행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송치 했던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김 모 씨에 대한 추가 수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연희동 인근 피해자 약 80%의 계약을 중개했습니다.

우OO/27살 회사원
7년 동안 이 집주인을 봐온 결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공인중개사가 저에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땅도 집주인에게 직접 알선을 했다고 하고, 이 땅에서 건물을 세우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집주인에게 줬고.

취재진이 제공받은 계약 당시의 녹음 파일
김OO/신촌 인근 공인중개사(음성변조)
(근저당이) 14억 2,680만 원과 지금 9억 4천8백만 원이 있어요. 그런데 이 중에서 이 금액(14억 원)을 아마 상환하실 거예요. 11월쯤 상환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 금액은 아닐 거에요. 서류상으로 볼 때 매매가액 지금 한 40억 원 이상은 아주 보수적으로 본다고 그러면. 저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입주를 할 것 같아요. 보증금 반환 받아 나가는 데 전혀 지장 없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은 기존의 빚을 갚지 않았습니다. 선순위 보증금이 얼마인지 적혀있을 곳은 0원이라고 표시했습니다.
김OO/신촌 인근 공인중개사(음성변조)
(기자: 선순위가 뭐가 잡혀 있는지 안 나오니까 등기부등본 떼어봐도, 그때 뭐라고 한 거예요?) 그때 물어봤는지 안 물어봤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분이 힘들단 생각을 안 했었어요. (기자: 왜 이분들한테 괜찮은 물건이라고) 괜찮은 물건 맞았어요.

지난달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인원은 만 8천여 명, 4명 중 3명은 2030 청년들입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아직 온전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매로 집이 팔리더라도 변제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세입자 몫이 남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지수/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그것을 기다리는 것마저도 2년, 3년 어떻게 될지 모르고. 기다린 이후에 내가 배당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정치권에선 나라가 우선 빚을 갚아주자, 피해 주택을 사들여 손해 본 보증금을 보전해주자 등의 논의가 이어지곤 있지만 진전은 없습니다.
이강훈/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이거 못 받으면 회생하거나 파산하셔야 하는 상황에 들어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20대, 30대 초반에 파산, 회생부터 겪으면서 인생을 출발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이런 청년들한테 기운을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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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기자 (realwa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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