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사람 잡는 폭염
이교덕 씨의 일터는 대형마트 주차장입니다. 마트에서 일한지 13년, 그중 6년을 주차장에서 일했습니다. 마트 실내주차장은 여름이면 한증막처럼 달아오릅니다.
이교덕/대형마트 주차장 관리 직원
더울 때는 오히려 2층이(실내) 힘듭니다. 환기가 잘 안 되기 때문에 2층은 늘 차가 꽉 차 있고 10여 대가 돌고 있어서 엔진이 계속 켜 있는 거예요. 그 엔진열 때문에 환기도 안 되고 해서
시원하게 차를 유지하려고 시동을 켜둔 채 장을 보러가는 고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뜨겁게 달궈진 주차장에서 하루 8시간을 일하다보면 생명의 위협도 느껴질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한여름에 장마철이 오고 습기가 차게 되면 감당하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의 호흡 곤란이 온다는 이교덕씨.
하지만, 같은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카트 정리 노동을 하던 29살 김동호 씨는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6월. 그날은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평소처럼 낮 12시에 출근한 김 씨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오후 3시 쯤부터 몸에 불편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조퇴하고 싶다.”
저녁 7시까지 업무를 계속하던 김씨는 급기야 함께 일하던 동료의 도움 받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됐습니다. 주차장 한 구석에 쪼그려 앉는 김씨. 잠시 뒤 고개를 푹 떨굽니다. 한눈에 봐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잠시 후 간신히 일어난 김씨는 왼쪽 가슴을 부여잡더니 차량 뒤쪽 계단으로 모습이 사라집니다. 그로부터 4분 뒤, 김씨는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김씨는 그날 밤 숨을 거뒀습니다.
별다른 질환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29살 김동호씨. 그는 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일까?
김씨의 사망진단서입니다.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폐색전증입니다. 다리 정맥에서 발생한 혈전이 폐혈관을 막아 사망에 이르렀다는 진단입니다. 폐색전증의 원인으로는 과도한 탈수, 즉 몸에 수분이 부족해졌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온열이었습니다.
김호중/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이 친구 같은 경우는 예비적 신호가 있었잖아요. 계속 가슴이 아프다 불편하다. 그러니까 이게 물론 이 일을 하면서 그게 콤바인이 된 게 아니라 원래 질환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친구들 같은 경우에 그 일에 갑자기 노동력이 추가가 되고 더위에 추가가 될 경우에는 이 질환이라는 거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단은 진행을 해버리게 되는 거죠.
김 씨가 숨지기 이틀 전, 근무스케줄푭니다. 3시간 일하고 15분 휴식. 한시간 15분 일하고 식사.한시간 45분 일하고 15분 휴식. 한시간 반 일하고 한시간 더 연장 근무를 했습니다. 김씨가 일한 시간은 모두 8시간 30분
이날 김씨가 걸은 걸음수는 4만 3천보. 이동한 거리는 26.42km에 달했습니다. 서울 잠실역에서
김포공항까지의 거립니다.
김씨가 숨진 당일에는 2만 9천보를 걸었고 17km를 이동했습니다.
이미현/마트노조 코스트코 지회장
35도가 넘는 온도였고 하루에 이렇게 많은 4만 보 이상 걸음을 걸었고 이런 걸 의사한테 설명을 해준 거예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온열 질환으로 진단서를 끊어주신거죠.
김 씨가 숨진 그날 처럼 때이른 폭염이 덮친 지난달 21일, 같은 마트 주차장으로 가봤습니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32도. 가장 덥다는 낮 2시부터 걸어다니면서 노동자들이 어떠한 온열 질환에 노출되어 있는지 한번 실험을 해봤습니다.
실내 주차장은 차량들이 내뿜는 열기로 바깥보다 뜨겁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기온은 35도. 외부의 온도보다 훨씬 더 높았습니다. 바람도 잘 통하지 않고 자동차 때문에 열기도 많기 때문입니다.
외부보다 오히려 4도 높은 기온의 실내주차장을 한시간 동안 걸어다닌 뒤 체온을 재봤습니다. 37.1도. 미열이 나는 수준이었습니다.
한 시간을 더 돌아보았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과 엔진 소음, 환풍기는 분명 돌아가고 있었는데 탁해진 공기로 가슴이 답답해져왔습니다.
김기화/취재기자
지금 너무 힘들고 정신이 좀 혼미해요. 정신이 혼미하고 사실 제가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같이 일을 한 거가 아니라 걷기만 했는데도 사실 지금 그냥 그만두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어요.
2시간동안 기자가 걸은 걸음수는 1만 1천보. 8시간 반을 일하고 4만 3천보를 걸었던 고 김동호씨가 한 시간에 걸었던 걸음과 비슷한 비율이었습니다.
체온을 재봤더니 37도에서 38도까지 육박했습니다. 체온이 이보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온열질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김호중/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우리 열 감기 걸리잖아요. 감기 걸리면 평균적으로 38도에서 39도 사이에요. 38도 넘으면 어떤 증상이 생기세요? 몸살이 나요. 땀이 계속해서 분출이 되는 상황이 되는 거고 거기에다가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해서 나오게 되잖아요. 그것 때문에 박동수가 증가하게 되죠. 그러게 되면 갑자기 호흡 곤란이 생길 수가 있고
폭염에도 피할 수 없는 일, 바로 배달인데요. 요즘엔 별다른 준비없이 자전거로 배달에 나서는 분들도 많습니다. 낮 최고기온이 32도인 날, 땡볕에 배달을 하면 어떻게 될까. 자전거를 타고 직접 배달을 하러 나가봤습니다.
햇빛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점심시간, 첫 번째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성신여대 입구의 김밥집에서 받은 김밥을 한성대입구역 인근의 한 빌라까지 배달했습니다.
뜨거운 태양에 오르막길이 겹치며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배달을 마치자마자 들어온 두 번째 주문. 성균관대학교 앞의 덮밥집으로 출발했습니다. 배달을 시작하고 여기까지 이동한 거리만 3.5km. 다음으로 가는 곳은 농협은행입니다. 감사원 제3별관 2층 농협은행. 배달받을 곳까지는 네비게이션 상으로 1.7km. 자전거 7분 거리입니다.
하지만 잘못 들어선 길. 한번 시작된 오르막길이 끝날 줄을 모릅니다. 성균관 대학교를 지나서 북악산길로 향하는 계단이 등산로처럼 이어집니다. 더위와 피로에 지쳐가지만 배달음식이 식어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김기화/취재기자
그만하고 싶어요. 죽을 것 같아요.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근데 머릿속에는 빨리 갖다 드려야 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계속 죄책감이 느껴지고
하지만 배달 시간이 늦어지면 배달원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제시간에 배달해야만 합니다. 우여곡절끝에 배달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며 체온을 측정해봤습니다. 마트 주차장에서 체험했을 때와 같은 온도가 측정됐습니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32도. 배달을 시작한지 3시간. 계속 햇볕을 쬐며 자전거로 이동하다보니 체력이 빠르게 고갈됐습니다. 야외에서 돌아다니다보니 더위보다 더 힘들었던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계속되는 갈증이었습니다.
이렇게 목이 마를때는 물을 충분히 마시고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쉬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쉴 수 없는 배달 업무. 세 번째 배달을 위해 음식점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아직 음식 조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잠시나마 쉴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럴땐 빨리 찬물을 마셔야 합니다.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섭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김기화/취재기자
이렇게 더운 날에 물을 계속 먹고 싶은데 물을 계속 사러 가기도 애매하고 또 이게 또 물을 그냥 두니까 뜨거워져 마시니까 미지근한 게 아니라 뜨거워질 정도라서 그게 되게 힘들었어요.
김호중/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피부의 바깥 온도를 떨어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 온도를 일단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수분과 차가운 물을 먹는 거는 굉장히 중요한 어떤 요소가 될 수 있어요.
다음 음식점에서도 아직 음식 준비가 덜됐습니다. 하지만 마땅히 휴식할 공간이 없어 건물 계단에 잠시 앉아서 쉬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쉬면 좋겠지만 배달업무의 특성상 주문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배달하지 않으면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없습니다. 배달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두 9건의 배달을 마치고 2만8천9백원을 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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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에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한다고 해도, 집으로 돌아와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면 다음날 몸의 상태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휴식을 위한 집도 폭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음날 찾은 서울의 한 쪽방촌.
집이 아닌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백창기씨를 만났습니다. 백씨는 집이 너무 더워 식사를 할 수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백씨의 집을 따라 가봤습니다.
백창기/쪽방촌 주민
진짜 더워서 방에 못 있어요. 그냥 방에 있는 거는 빨래나 하러 오고 옷이나 갈아입지. 빨래도 어제 저녁에 다 해놨거든 양말 다 빨고 속옷 다 빨아놓고
마르지도 않아요 말 그대로 지옥이에요. 쪽방이 아니라.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합니다. 저녁 6시 무렵 백씨의 집 온도는 30도. 그런데 습도가 66%나 됩니다. 덥고 습하다보니 악취가 진동하고 벌레가 들끓을 수 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이 집에서 8년을 살았다는 백씨는 앞으로의 더위가 걱정입니다.
백창기/쪽방촌 주민
열사병으로 진짜 죽는 경우도 봤어요. 너무 더워갖고.
재작년인가 한 명 죽었어요. 여기서.
한반도의 최고 기온과 폭염 기간도 해마다 갱신되는 중입니다.
이명인/UNIST 폭염연구센터장
발생 일수. 폭염이 발생하는 날짜도 이제 특히 7월 말 8월을 중심으로 해서 늘 거라고 보고 있고요. 인도나 멕시코 그리고 북유럽 같은 데서 지금 40도 이상의 기록적인 폭염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발생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폭염시 작업가이드라인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불안을 호소합니다.
이미현/마트노조 코스트코 지회장
사실은 근무하는 인원이 몇 명 안 되는 거예요. 그 안에서. 그러니까 휴식시간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요. 막 무전이 오거든요. 카트 비었다 카트 날라라 그러니까 쉴 수가 없죠.
무더위는 이제 예전과는 달리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새로운 양상의 폭염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명인/UNIST 폭염연구센터장
피해액은 태풍이나 집중호우 같은 것들이 월등히 많습니다. 하지만 사망자 수를 보시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가장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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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 기자 (kimk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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