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수미 테리 사건’ 文정부 탓이라는 용산
기소된 테리 공소장 살펴보면
尹정부 들어 협업 더 두드러져
전 정권 탓하며 수습 시도 오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엿새 앞둔 2023년 4월18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동맹 70주년 포럼’이 개최됐다.
행사에는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이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북·미 협상에 관여한 앨리슨 후커 전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 앤드루 여 미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 웬디 커틀러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등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등이 참가했다.
백악관 한국 담당 국장을 포함,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한반도 전문가 다수가 참석하는 행사인 만큼 본인을 포함해 워싱턴 특파원 다수가 참석했고, 행사에 나온 발언들을 자세히 보도했다. 케이건 당시 국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과 파트너십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이 잘 맞고(good chemistry) 서로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당시 행사는 윌슨센터와 한국국제정치학회가 공동 주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소장을 보면 한국국제정치학회가 윌슨센터에 행사 비용으로 2만5400달러(약 3500만원)를 지불했고, 국가정보원이 주미 대사관 명의로 2만6000달러(3600만원)를 테리 연구원에게 전달했다. 테리 연구원은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금액을 회계 처리 등이 자유로운 무제한 계좌(unrestricted gift account)로 입금했고, 자금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한국 외교부는 행사 이후 보도자료를 내고 행사 사실을 홍보했다. 대통령의 국빈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행사로 볼 수 있지만, 외교부와 국정원이 테리 연구원에게 뒷돈을 주고 여론전에 나섰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뿐만 아니다. 그해 4월10일에는 외교부 공무원이 테리 연구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관한 기사를 한국 신문에 게재하고, 온라인에는 더 자세한 기사를 실어달라고 부탁하면서 ‘500달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테리 연구원이 기사 방향을 묻자, 외교부 공무원은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에 큰 의미가 있고, 좋은 일”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3월에는 외교부 공무원이 테리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어 윤 대통령의 일본과의 관계 개선 노력에 대한 기고를 부탁했고, 테리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한국, 일본과의 화해를 향한 용감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기고를 실었다. 테리 연구원은 외교부 공무원에게 “기사가 맘에 드셨기를 바란다”는 메시지와 함께 기고 링크를 보냈고, 외교부 공무원은 “감사하다. 대사와 국가안보보좌관이 칼럼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장했다.
테리 연구원의 기소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문재인정부에서 있었던 사례들을 강조하며 문재인정부와 당시 국정원에 책임을 돌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실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 테리 연구원과 외교부, 국정원의 협업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 사실이다. 워싱턴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하는 미국 측 인사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워싱턴에서의 한국 관련 행사나 보고서 등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됐다”고 우려했다. 대통령실이 문재인정부를, 국정원을 탓해가며 사태를 수습할 생각을 한다면 큰 오판이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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