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는 약, 버려달라 했더니…" 약국 찾아간 30대 '하소연' [이슈+]
"약국에서 약 살 때 조금씩 가져가 수거를 부탁드리긴 하는데 눈치 보이죠. 집에 처치 곤란인 약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어요. 지난번에 간 약국은 물약은 아예 안 받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경기도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생후 20개월 된 아들을 키우다 보니 집에 폐의약품이 너무 많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요즘에는 폐의약품을 안 받는 약국도 많다"며 "약국 말고는 달리 방법을 몰라 집에 쌓아두다가, 최근에서야 주민센터에 버려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 있는 집은 순식간에 폐의약품이 쌓인다. 편리하게 폐의약품을 버릴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종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다다른 가운데, 폐기물 중에서도 폐의약품 분리배출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약국에 폐의약품을 가져갔더니 수거를 거부했다"는 시민의 후기까지 올라오면서 폐의약품 수거 기준을 통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민들이 흔히 약을 버리러 향하는 곳은 약국이다. 하지만 요즘 일부 약국에서는 폐의약품 수거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약국이 폐의약품 수거를 거부하고, 보건소나 주민센터로 안내해서다.
약국도 애로사항은 있다. 약국이 폐의약품을 보관하고 있으면 지자체에서 이를 수거한 뒤 소각해야 하는데, 지자체서 약국에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실제로 약국에서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이러한 수거 갈등으로 2021년 서울시 약사회는 서울시에 "약국에서 폐의약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다.
직업정신으로 여전히 폐의약품을 받는 약국도 있지만 약국서 거절당한 시민들은 대부분 인근 보건소나 주민센터의 폐의약품 수거함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폐의약품 수거함의 위치를 일일이 알아봐야 하고, 농어촌의 경우는 수거함이 너무 멀리 있어 불편이 크다.
지자체가 제시하는 폐기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문제도 있다. 경기도 수원시는 폐의약품을 아예 종량제 봉투에 버릴 것을 권한다. 폐의약품은 보통 전량 소각하는데, 일반쓰레기를 매립하지 않고 소각하는 지자체의 경우, 종량제 봉투에 일괄적으로 버리면 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서울시와 세종시 등은 우정사업본부와 협력해 우체통에도 폐의약품을 버릴 수 있게끔 했다. 우체통 시스템을 도입한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7~9월 폐의약품 수거량이 월평균 15.6톤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2% 늘었다. 효과가 있다는 진단이다. 다만 이 경우 내부의 우편물이 알 수 없는 화학용품으로 훼손될 우려가 있어 시럽 등 물약은 배출할 수 없다.
지자체마다 제각각인 데다 폐기 방법조차 편리하지 않은 탓에 폐의약품이 제대로 분리 배출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선 편리한 폐의약품 폐기 기준을 만들고 이를 전국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폐의약품은 화학용품으로, 생활계 유해폐기물에 속한다"며 "폐의약품을 무분별하게 버릴 때 하천과 토양에 미칠 영향을 가늠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폐의약품은 누군가 책임지고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폐기물"이라며 "폐기물 생산자재활용책임제도(EPR)를 의약계에도 적용해 생산 주체가 이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공통으로 약의 생산 주체인 약국에서 폐의약품의 수거 의무도 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특히 처방약에도 유통기한을 명시해주거나, 약 성분이 무엇인지 의무적으로 명시해준다면 시민들이 처방약도 최대한 소진할 수 있지 않겠냐"며 "폐의약품을 어디에 버릴 것인지 고민하는 것과 함께 폐의약품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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