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유공자 후손 공무원 할당’ 반대 시위 격화
취업난 대학생 주도로 확산
‘철권통치’ 불만 누적 분석도
방글라데시에서 독립 유공자 후손을 대상으로 한 ‘공무원 할당제’ 반대 시위가 격화하면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2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면서 이날까지 최소 114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다쳤다. AFP통신도 최소 115명이 이번 시위로 숨졌으며, 절반 이상은 경찰 발포가 원인이라고 전했다.
정부의 태도는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전날부터 전국에는 통행 금지령이 내려졌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지시에 따라 도로에는 군과 경찰이 배치됐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통신이 차단됐고, 방글라데시 주요 언론 홈페이지는 지난 18일 이후 업데이트를 멈춘 상태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보과학연구소의 존 하이드만은 “인구가 1억7000만명인 나라에서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은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로 본 적이 없는 조치”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시위를 촉발한 건 방글라데시 정부가 독립 유공자 가족을 대상으로 추진해온 공무원 할당제다. 정부는 1971년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군인 자녀에게 공직의 30%를 할당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반발이 커지면서 2018년 할당제가 폐지됐지만, 지난달 고등법원이 제도를 부활하겠다고 결정하면서 취업난을 겪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방글라데시의 청년 실업률은 40%에 달한다.
대학생들은 이 제도가 차별적이라며 실력에 따른 채용을 요구하고 있다. 소수민족 및 장애인을 위한 6% 할당만 유지하고 나머지 할당은 폐지해야 한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독립전쟁 참전군인 자녀들만 혜택을 누리는 건 옳지 않다는 취지다. 이 제도가 친정부 인사 자녀들의 공직 진출을 보장하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의구심도 깔려 있다고 외신들은 짚었다.
이번 시위가 하시나 총리의 ‘철권통치’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는 지난 1월 선거에서 4연임을 달성한 하시나 총리의 15년 재임 기간 중 최대 규모의 시위로 꼽힌다. 하시나 총리는 집권 이후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정부 인사들의 부패 의혹이 끊이지 않았으며, 야권과 언론을 탄압해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는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다카대의 사미나 루트파 사회학 교수는 “정부를 향한 분노는 오랫동안 누적돼왔다”며 “이제 시위에는 학생들을 넘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BBC에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고등법원 판결로 혼란이 커지자 다음달 7일로 예정돼 있던 최종 판결을 21일로 앞당겼다. AP통신에 따르면 대법원은 공무원 30%를 독립 유공자 후손에게 할당한다는 하급 법원의 명령을 기각하고 정부 일자리의 93%를 할당제 없이 개방할 것과, 독립 유공자에 대한 공직 할당 비율을 기존 30%에서 5%로 축소 배정하라고 판결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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