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혼인·혈연 틀에 묶인 가족 개념…법 개정 촉구 목소리 커질 듯
여가부 “사회적 합의 우선”…인권위 “국회서 법률안 논의를”
지난 18일 대법원 판결을 통해 동성 부부가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우자로서의 법적 권리를 인정받았지만, 동성 부부는 여전히 법이 포괄하는 가족의 형태에 들어 있지 않다. 가족의 법적 정의는 여전히 혼인과 혈연의 틀에 묶여 있고, 동성 배우자는 민법상 혼인관계로 성립되지 않는다. 가족의 개념을 확장하는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가족 개념에 대한 법적 정의는 크게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에서 찾을 수 있다. 민법은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를 가족으로 본다.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도 가족에 포함된다. 민법상 배우자는 이성을 전제로 한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단위로 규정한다. 사실혼, 비혼 동거 가구는 건강가정기본법상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는 가족 개념을 재정립하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동성 동반자에 대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문제와 법적 가족의 정의 확대는 다른 문제로 나온다”며 “가족의 정의 확대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선 가족의 범위를 혼인·혈연·입양에 국한하지 않는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됐다. 2020년 9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가족의 개념을 서술한 조항을 삭제하고 ‘건강가정’을 ‘가족지원’ ‘가족정책’ 등 중립적인 단어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지난해 4월에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생활동반자법)을 대표발의했다.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법률혼·혈연과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고 함께 영위하는 관계도 가족관계의 법적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자는 내용이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5월 ‘혼인평등법’이라 불리는 민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민법상 부부와 혼인의 개념에 동성 커플도 포함되도록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가부는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기 위해 건강가정기본법상 가족의 정의를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1년 4월 여가부가 발표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보면, “가족의 정의를 혼인·혈연·입양 이외의 다양한 가족을 포함할 수 있도록 확대”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방지 근거 신설” “가족 관련 개별법에 각 제도의 취지에 맞는 가족 범위 규정 마련” 등이 정책 과제로 제시됐다. 다만 당시에도 동성 부부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여가부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계획을 철회했다. 2022년 9월 여가부는 “(건강가정기본법의)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고 답변해 전 정부의 입장에서 뒤바뀐 태도를 보였다. 여가부는 당시 “현행 유지로 변경한 것은 사실혼·동거 가족을 정책적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개정안으로 인한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건강보험뿐 아니라 성소수자 가족이 놓인 법적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입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9일 성명에서 “성소수자 동반자는 함께 생활하고 서로를 부양하고 있음에도 보호자로 인정되지 않아 유족연금 수급권을 비롯한 상속, 장례, 재산분할 등 사회보장 및 여타 법률관계에서 법률혼 또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제반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22대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이 상정돼 본격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훼손 시신’ 북한강 유기범은 ‘양광준’···경찰, 신상정보 공개
- [속보]‘뺑소니’ 김호중, 1심서 징역 2년6개월 선고···“죄책감 가졌나 의문”
- 안철수 “한동훈 특검 일언반구가 없어···입장 밝혀야”
- [단독] 법률전문가들, ‘윤 대통령 의혹 불기소’ 유엔에 긴급개입 요청
- 트럼프, CIA 국장에 ‘충성파’ 존 랫클리프 전 DNI 국장 발탁
- [영상]“유성 아니다”…스타링크 위성 추정 물체 추락에 ‘웅성웅성’
- 가장 ‘작은 아기’가 쓴 가장 ‘큰 기적’…지난 4월 ‘국내 최소’ 260g으로 태어난 ‘예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