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소위 진보가 망해가는 이유

기자 2024. 7. 2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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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밴스의 회고록을 읽어보라. 세계 최강국 부통령이 유력한 자에 대해 뭐라도 배우자는 게 아니다. 그 책에 어떤 목소리가 담겨 있어서다. 누구도 대변하지 않는 목소리에 주목한 저자의 시선도 함께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읽기에 지친 독자라면 넷플릭스 검색창에 ‘힐빌리’라고 치면 나오는 영화를 봐도 좋다.

작가로서 성공하자마자 공화당 지지본색을 드러낸 개천용 따위의 글은 안 읽겠다고 다짐한 이도 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굴지 말자는 게 이 글의 요점이기에, 그리고 현대 정치에서 변절과 충성을 따지는 일은 덧없다는 말을 전하고 싶기에 다시 정색하고 권유한다. 그렇다면 서점에 들러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를 찾아보자. 다수의 유명 평론가가 읽은 사회파 소설이어서도, 퓰리처상에 빛나는 신작이어서도 아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어느 동네든 어느 때든 가난, 중독, 그리고 절망에 빠진 자들의 목소리를 내버려 둘 수 없는 까닭을 이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민주당과 혁신당이 전당대회를 한다던데, 세상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뭐가 민주적이고 어째서 혁신적이란 건지 모르겠지만 가난하고, 절박하고,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진보 전당들의 대회라니 확실히 이상하다. 그런 목소리는 상관없다는 듯 어대명이니 뭐니 정치담론을 뽑아내는 자칭 진보언론은 기괴할 지경이다. 민주화의 적통이라거나 혁신의 기수라거나, 어떤 이념에 복무한다고 다짐한 언론들이 함께 모여 이번엔 조용히 가자고 결의한 것만 같다. 이 나라 진보는 가난한 이, 절박한 이, 좌절을 거듭하는 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서사마저 스스로 팽개치고 있다.

그래도 지난 총선에서 승리했고, 앞으로 지방선거와 대선도 이기면 그만이라고 뻐기는 자들이 있다. 그래서 망한다는 거다. 다음 선거도 이길 수 있겠단 얄팍한 계산과 궁리 속에 절박한 이들의 목소리는 없다. 옆집에 무슬림이 이사 왔다고 노심초사인 시골 노인의 염려, 자식이 결혼하는데 전셋집도 못 구해줘 괴로운 중늙은이의 하소연, 6년 후부터 감당해야 할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아이는 낳을 수 없겠다는 새댁의 다짐, 국방의무를 다한 게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배워야 하는 청년의 침묵, 그리고 향후 당할 좌절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명랑하게 자라주기만 해도 고마울 뿐인 소녀의 바람(aspiration)을 담은 목소리가 없다.

오히려 그런 목소리를 막고 순화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돈다. 노인의 염려를 차별적이라 가로막고, 중늙은이의 하소연은 분열적이라 반대하며, 새댁의 다짐과 소녀의 바람을 순진한 허위의식이라고 비웃는다. 청년의 침묵에 대해서는 말도 말자. 침묵은 좌절이 되고, 분노가 되어 이 시대의 데마고그가 참칭하는 이유가 되고 이념이 된다. 이른바 진보라는 자들이 증오와 혐오가 표상하는 현실의 가혹함에서 눈을 감고, 그것을 표현한 발언의 진정성에 귀를 막고 있는 가운데, 혐오스러운 현실을 문제 삼고 증오하는 마음을 대신하는 데마고그가 자라고 있다.

권력의 향방에 민감한 자들은 걱정만 한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재집권이 유력하고,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의석수를 늘려 나가고, 민주화 이행을 겪은 나라에 독재자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고. 이치에 밝은 자들은 자신도 믿지 않는 이념을 내세우고, 복잡한 수치와 도표로 만들어 세상이 망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래, 이런 설명도 필요할 때도 있겠지. 그러나 애초에 왜 걱정을 시작했고, 새삼 누구에게 설명하려 한단 말인가. 민주주의를 믿고 진보를 추구한다면서 어떻게 절망하는 이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있나. 힐빌리에서 비참하다는 이유로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듯 가족을 이루어 의연하게 사는 누나가 주인공에게 말한다. 우리를 핑계로 삼지 말라고.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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