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박정희 동상 세우지 마라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의 관문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려고 한다. 속도전이다. 벌써 조례를 만들었고 예산도 배정했다. 반대 목소리가 있지만 개의치 않겠단다. 올여름에 기승을 부린 ‘도깨비 장마’처럼 습하고 어두운 소식이다. 이 이념 과잉의 도시에 잿빛 구름이 몰려온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랫말처럼 “장맛비 구름이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 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내리고 있다.
오래전 누군가 박정희를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 했다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이 도시에서 그는 온전한 신(神)이다. 그의 초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열심히 기복(祈福)하는 모습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이 들어서면 대구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발아래를 지나게 될 것이다. 싫어도 그 ‘신’의 시선을 피할 방법은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곳은 가슴 벅찬 경배의 순례지겠으나, 그의 그림자만 봐도 아픈 기억을 소환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약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라는 세 글자에 가위가 눌리는 사람들도 동대구역에 내리면 꼼짝없이 그의 동상 앞을 지나가야 한다. 그건 분명 폭력이다. 공포의 신탁(神託)이다.
홍준표 시장이 왜 이렇게 느닷없이 ‘박정희 동상’을 들고나오는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정신으로 치면 대구에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대구는 여전히 보수정당 지도자들이 출정 결의를 다지는 곳이다. 지지도가 곤두박질할 때마다 불쌍한 표정을 한 대통령들이 기를 받기 위해 찾는 곳이다. ‘보수’의 성스러운 ‘은혜’를 몸으로 느끼기 위해 그들은 서문시장을 방문한다. 요즈음은 한 곳이 더 늘었다. 신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거하는 곳이다. 대구에는 보수의 기표(旗標)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 이미 도시 전체를 ‘보수의 성지’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홍준표 시장이 정치적 욕심으로 박정희 정신을 선양하는 어떤 민간 단체의 ‘박정희 동상’ 아이디어를 ‘가로채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는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홍 시장이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다. 홍 시장이 직시해야 할 건 박정희 시대의 고통이 아직 살아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박정희의 사법살인으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수십 년이 지나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그분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러니 그분들의 가족에게는 어떤 것도 해원(解寃)일 수 없다. 박정희 때문에 학교에서, 직장에서 쫓겨나고 인생이, 가족이 풍비박산 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홍 시장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가증스러운 것은, 이런 피 묻은 상처들이 ‘경제발전을 위해 불가피했다’라는 논설이다. 확언컨대, 그 명제는 참이 아니다.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로 민주적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고, 궁정 쿠데타로 유신 독재 체제를 수립했던 것은 ‘경제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박정희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였다.
홍 시장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박정희 동상을 만들어서 박정희를 신의 전당에 가두는 일은 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박정희의 공조차 묻히게 하는 어리석은 일이고, 대구의 도시 이미지를 고립시키는 안타까운 일이며, 홍 시장의 정치적 미래에 걸림돌이 될 걱정스러운 일이다.
신화의 영역은 ‘믿느냐 믿지 않느냐’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숭배하거나 밧줄을 걸어서 당기거나 둘밖에 없다. 홍 시장의 말처럼 박정희의 공과를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면 박정희를 ‘신화의 영역’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박정희 동상 세우는 건 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동상은 박정희의 신화를 구축하는 일이고 그의 공과를 따지는 것은 역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 시절에 자신의 아버지를 “내려놓겠다”고 했다. 박정희를 신화의 영역에서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딸도 내려놓은 걸 홍 시장은 왜 다시 들어 올리려는가?
홍 시장은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 끝났다. 동상을 만들어도 괜찮다.” 그렇지 않다. 역사란 시간의 비바람에 씻기고, 쓸려나가고, 색이 바래고, 그러고도 남아 있는 그 무엇이다. 소설가 이병주가 자신의 대하소설 <산하>의 서문에 이렇게 말했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박정희 동상은 그의 시대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겪고도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세워도 세울 일이다. 지금은 아니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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