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사랑이 이겼고 또 이길 것이다
7월18일, 긴장된 마음으로 대법원 대법정에서 선고를 듣기 시작했다. 대법원장이 이유 요지를 읽기 시작하고 몇분 뒤, 동성 동반자를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가 떠올랐다. 이겼다. 판결 선고가 끝나고 모두가 웃고 울면서 함께 법정을 나온 뒤, 한마음으로 외쳤다. 사랑이 또 이겼다.
이날 대법원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사실혼)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성 동반자에게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동성 동반자인 원고의 피부양자 지위를 박탈하고 보험료를 소급 부과한 처분을 취소한 서울고등법원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는 대법원이 처음으로 동성 동반자의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다.
동성 동반자도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이성 동반자와 본질적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직장가입자와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이다. 건강보험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동성 동반자를 배제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대법원의 기본적인 판단은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선고한 이번 판결은 중요한 지점을 짚어줬다. 바로 사회보장제도에서 피부양자 지위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단지 경제적인 불이익이 아닌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침해라는 점이다. 소송 초기부터 피고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원고가 월 몇만원만을 부담하면 지역가입자로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굳이 소송을 함으로써 얻을 이득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대법관 4인의 별개의견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지적하듯 그 주장은 제도 안에서 존재가치를 공인받은 ‘수혜자 신분’에서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다. 원고가 소송의 시작부터 계속 주장해온 것처럼 동성 동반자가 제도에서 배제됨으로써 겪는 피해는 단지 제도에 편입됨으로써 얻는 물질적, 경제적 혜택의 상실로 얘기될 수 없는 ‘존재가치의 침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서로를 돌보며 가정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제도상으로는 그저 동거인으로만 표시될 때, 전화 한 통으로 착오였다면서 이미 인정되었던 피부양자 지위가 박탈되고 아무 관계가 아니게 될 때, 함께 부모로서 자녀를 낳고 키우고 있음에도 법적으로는 가족으로 묶일 수 없을 때, 직장에도 가족에게도 서로의 관계를 드러내지 못하고 단지 친구라고 소개할 수밖에 없을 때, 동성 부부는 존재가치의 상실을 경험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획기적이지만 한편으로 오랜 시간 성소수자들이 겪어온 그 상실에 대한 작은 위로였을 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제는 대법원 판결 그 이후를 이야기해야 한다. 답은 정해져 있다. 모든 사람이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상관없이 서로의 관계를 존중받고 가족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 바로 혼인평등, 동성혼 법제화이다. 아시아에서 이미 대만, 네팔, 태국이 이루고 일본에서도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의제를 더 이상 한국의 법과 제도, 사회가 외면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혼인평등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대법원 판결의 한 문단을 따와 물어본다. “쌍둥이 자매가 성장하여 동반자를 선택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각기 성적지향에 따라 한 사람은 이성 동반자를 선택하고, 한 사람은 동성 동반자를 선택하였다면, 이들이 받는 사회적 처우가 달라야 할 것인가.” 답이 그렇지 않다면 나아갈 길은 분명하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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