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명심탐구]‘거짓말’의 정치경제학

기자 2024. 7. 2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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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가족의 거짓말은 일상
특히 ‘돈’ ‘성’에는 솔직하지 않아
관계의 일상 복원만이 해결책
정치도 ‘진실 공방의 늪’에 빠져
이런 역겨움 국민 건강에 치명적

가족들은 왜 그렇게 비밀이 많을까? 드라마를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대부분 은밀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이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겉으로는 지극히 애틋해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속이고 속인다는 것, 이것이 가족드라마의 기본설정이다. 스릴과 서스펜스를 잘 갖추고 있으면 ‘주말’드라마, 다소 거칠게 진행되면 ‘일일’드라마다. 진행패턴은 대체로 비슷하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스위트 홈’에 어둠의 그림자가 들이닥치고 각종 비밀들이 폭로되면서 그동안의 행복이 다 가짜였음이 판명된다. 충격과 배신감, 분노와 갈등으로 파국을 겪지만 우여곡절 끝에 일상을 회복하는 것으로 급마무리! 배우들의 비주얼과 탁월한 연출효과 등에 압도되다 보면 이 비극의 배후에 ‘운명의 장난’ 혹은 ‘신의 저주’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사건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관통하는 건 결국 ‘거짓말’이다.

드라마라 그런 거 아니냐고? 현실은 더 심하다. 우리 시대 가족들에게 있어 거짓말은 일상이다. 특히 ‘돈’과 ‘성’에 관련된 사항들은 솔직하게 털어놓는 법이 없다. 주고받는 건 피상적이고 습관적인 멘트뿐. 하여, 가족은 서로를 잘 모른다. ‘대화를 할수록 멀어지는 관계’-이것이 가족의 통상적인 정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가장 큰 명분은 사랑과 배려다. 상처주기 싫고, 내가 눈감으면 그만이고 등등. 이거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랑과 배려의 원천은 진실이다. 진실이라는 베이스가 없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다. 사랑과 진실의 지독한 어긋남! 모든 비극의 서막이다.

이치는 단순하다. 거짓말도 진화한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 처음엔 미세먼지 수준이지만 차츰 눈덩이처럼 불어나다가 마침내 돌풍이 되어 들이닥친다. 결과는 물질적 파산과 정신적 파탄. 이어지는 화병과 우울증. 이걸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쯤 될까?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참 의아하다. 입만 열면 가성비를 따지는 이 ‘포스트 모던한’ 시대에, 이 대책 없는 비효율성은 뭐지? 게다가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선 해피엔딩이 없다. 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은 일단 ‘거짓말의 그물망’에서 탈주하는 것이다. 그저 매사를 담백하게, 진솔하게 털어놓기. 관계와 일상을 복원하는 유일한 길이다.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요즘 사회 풍토를 보면 그런 것도 같다. 문화, 예술, 스포츠 등 거의 전 분야가 ‘거짓말 논란’에 휩싸여 있다. 한마디로 속고 속이는 게 일상이자 경제활동이 된 것. 특히 가장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정치는 압도적이다. 흔히 정치를 좌와 우, 보수와 진보라는 말로 구분하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보의 이념, 보수의 가치를 둘러싼 논쟁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 문명과 윤리의 비전에 대한 사상적 차이 또한 본 적이 없다. 언제부턴가 정치는 ‘진실 공방’의 늪에 빠졌다. 누가 더 ‘저급한’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를 두고 내기라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의 정치적 명분이나 정무감각조차 없다. ‘즉시 들통날’ 거짓말, ‘뜬금없는’ 거짓말, ‘자해에 가까운’ 거짓말 등등.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이로써 사생활과 공적 활동을 엄밀하게 가르는 ‘근대적 이분법’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가 판명되었다. 이건 민주주의 자체의 한계인가? 아니면 한국적 시스템의 함정인가?

이런 ‘희비극적’ 과정에서 소모되는 국력낭비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수준이다. 죽도록 노동해서 ‘국민총생산’을 높이고는 ‘거짓말 정국’으로 다 말아먹는, 참 희한한 산업구조다. 무엇보다 이런 ‘거짓말의 정치경제학’은 국민건강에 치명적이다. 그것이 야기하는 역겨움과 비루함은 전 국민의 폐와 뇌기능을 손상시키고 나아가 생명력 자체를 훼손한다. 어떻게 해야 이 ‘거짓말의 정치경제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간디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간디는 자타공인 결함투성이의 인간이었다. 그랬던 그가 훗날 ‘정치와 영성’을 하나로 잇는 ‘마하트마(위대한 영혼)’가 될 수 있었던 원천은 오직 하나, 진실이었다. 그는 성적 욕망을 포함하여 어떤 정치적 오류도 숨기지 않았다. 진실이 곧 “신”이자 “세계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었으므로. 공감한다. 진실의 ‘신성한’ 경지까지는 아닐지라도 정녕 거짓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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