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 인정” vs “성적 소수자 보호” 동성커플 둘러싼 대법원 막전막후[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대법원 판결문에는 ‘소수의견’이 있습니다. 하급심에서는 재판부가 합의한 내용을 중심으로 결론을 설명합니다. 반면 대법원 판결문은 반대의견, 별개의견, 보충의견 등 다양한 의견을 보여줍니다. 다수의견을 제외한 의견들을 소수의견이라고 합니다.
소수의견은 베일에 싸인 대법원 심리 과정을 슬쩍 엿보게 해줍니다. 오늘은 지난 18일 있었던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여부를 둘러싼 대법관들의 소수의견을 살펴보려합니다.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지만 ‘합치된’ 의견은 아니었습니다. 68쪽짜리 판결문에는 베테랑 법관들의 반박, 재반박, 재재반박이 숨가쁘게 이어졌습니다.
이번 소송은 ‘결혼식’을 올린 동성 커플이 제기했습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이성 커플이 피부양자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사실상 부부로 생활 중인 동성 커플도 피부양자로 등록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고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피부양자 제도에서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동성 동반자 집단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이성 동반자 집단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했습니다.
판결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동원, 노태악, 오석준, 권영준 대법관이 14쪽에 거쳐 별개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다수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반박해 김상환, 오경미 대법관이 20쪽에 이르는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냈습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인용하며 “성적 소수자들 또한 전체 법질서 안에서 가정공동체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아야 하고, 국가는 차별 없이 보호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다시 노태악 대법관이 짧고 굵게 나섭니다. “사법만능의 유혹과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사법의 본질이 달라질 수는 없다.” 판결이 대법원의 권한을 벗어났다는 강력한 비판입니다.
뒤이어 권영준 대법관이 12쪽에 걸쳐 지원사격합니다. “이 사건 판결을 통한 사실상의 입법은 법원이 사회 변화를 선도한 사례로 당장의 갈채를 받을지는 모르나, 판결의 의미와 사정거리를 둘러싼 불명확성은 한동안 사회의 부담으로 남을 수도 있다.”
대법관들은 2가지 쟁점을 두고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동성 동반자 집단과 이성 사실혼 집단은 동일한가’와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권한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입니다.
먼저 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 대법관의 공통된 별개의견입니다. 앞으로는 ‘반대의견’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동성 동반자와 이성 사실혼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결론이 ‘논리적 비약’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피부양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분요건 ▷부양요건 ▷소득 및 재산 요건 총 3가지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다수의견이 신분요건의 차이는 무시하고 부양요건만 강조해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차이’를 강조합니다. 이성 사실혼 집단은 혼인신고만 하면 곧바로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습니다.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전반적인 법질서에서 ‘법률혼’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듭니다. 반면 동성 동반자는 혼인 신고를 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다수의견이 ‘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을 두고는 다른 사례와 형평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예컨대 큰아버지가 조카를 부양하며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어도 직계비속, 직계존속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피부양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번 더 다수의견이 ‘섣부르다’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다수의견측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이 길게 답합니다. 단순히 두 집단의 동일성을 취사선택해 부각한 것이 아니라 ‘피부양자 제도’의 역사적 맥락과 변화하는 현실을 감안한 결론이라고 맞섭니다.
먼저 건강보험이 기준을 세워 국가의 울타리 안으로 특정 집단을 수용·배제하는 것은 단순한 선긋기가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혜택을 입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존재’를 인정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승인’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피부양자 제도에 사회구성원의 ‘승인’이라는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에 제도 운영에 있어 헌법의 원칙을 보다 분명하게 견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은 “헌법 10조를 거듭 읽어볼 필요가 있다”며 “특히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동성 동반자를 규정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 자체도 지적합니다. 혼인 신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데 이를 이유로 ‘당연히’ 배우자로도, 사실혼으로도 인정되지 않아 피부양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법 논리라는 지적입니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했다면 사법부가 구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반대의견의 논지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은 “국민건강보험법이 ‘신분요건’을 설정해 피부양자 범위를 결정한 것은 동성 동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에 기초해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마찬가지로)건강보험제도의 피부양자 관련 조항 목적이 혼인제도를 보호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건강보험이 기존의 혼인 제도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두번째 쟁점은 판결의 ‘후폭풍’입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에 한정돼있기는 하나 동성 동반자 관계와 이성 사실혼 관계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판결문의 입장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칩니다. 산업재해보상법에 따른 유족보상금 등 사실혼 상대방에게 적용되는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들부터 도마 위에 오를 겁니다.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어려운 길이 곧 피해야 하는 길은 아니라는 겁니다.
노태악 대법관은 ‘동성결혼’의 문제를 직접 언급합니다. 법원이 판결을 통해 여러 제도에 동성 동반자 집단을 편입시킨다면, 관련한 법을 만들지 않아도 실제적으로는 법률혼이나 이성 사실혼 집단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됩니다. 이를 두고 ‘사실상 법을 만드는 것’이라고 우려하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동성 동반자의 법적 지위 인정은 동성결혼 합법화 중간 단계에 속했습니다.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가 대표적입니다. 덴마크는 1989년 세계 최초로 ‘동반자관계 등록제도’를 시행했습니다. 동성 커플이 등록하면 이성 혼인에 준하는 대우를 받습니다. 입양 등에서 이성 혼인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법 개정을 거쳐 점차적으로 해소됐습니다. 덴마크는 2012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동반자관계 등록제도는 폐지 수순을 밟았습니다.
반대의견인 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 대법관은 이번 판결이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입니다. 원칙적으로 사법부는 만들어진 법을 적용·해석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번 판결은 사회보장제도는 물론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와 관계된 다른 사건에서 지속적으로 인용될 겁니다. 동성 동반자 관계를 이성 사실혼에 준하는, 더 나아가 동성결혼을 사법부가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권영준 대법관 또한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대법원의 판결이 논의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더했습니다.
반면 다수의견과 이에 대한 보충의견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둡니다. 헌법재판소가 할 일이라는 관점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원고가 대법원에 물었으니 대법원이 답해야 하고, 법률과 제도에 대한 헌법적 판단은 대법원에게도 주어진 임무라는 취지입니다.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은 헌법 제107조 제2항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이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는 조항입니다. 반대의견은 법의 해석에 위헌성이 있다면 헌법재판소가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반면 다수의견은 이번 사건이 국민건강보험법 규정 해석이 아니라, 건보공단의 ‘처분 결과’의 위헌성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참고로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소가 ‘동성혼’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에는 명확하게 ‘혼인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규정은 없기 때문입니다. 위헌성을 판단할 ‘법’이 없는데 어떻게 헌법재판소가 이를 심판하느냐는 지적입니다. 명확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동성혼, 동성 결합에 대한 제도적인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주체는 오히려 대법원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동성혼을 처음으로 법제화한 대만의 경우 민법에 ‘혼인은 남녀의 결합’이라는 규정이 존재했습니다. 2017년 5월 24일 대만 헌법재판소가 이같은 민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2019년 5월 24일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법이 통과됐습니다.
2022년 4월 대법원은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이라면 군인 사이 성관계를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를 만들었습니다. 대법원이 쓴 “동성 간의 성행위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다”는 표현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는 근거로 여러 판결에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도 등장합니다. 18일 대법원이 선언한 “동성 동반자 집단과 이성 사실혼 집단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명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대법원이 쏘아올린 공, 지켜봐야 겠습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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