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물 한 그릇 떠놓고 올린 결혼식. 친구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면서 무명 시절을 견뎠다. 그러나 돌아온 건 지독한 가난이었다. 10여년간 13번이나 집을 옮겼다.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이 허드렛일을 하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마지막으로 해보자는 심정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부산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는 작사가 김양화 PD에게 아내를 위한 노랫말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아내(송애경)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곡을 썼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이 없어라/ 가지 말라고 애원했건만/ 못 본 체 떠나버린 너/ 소리쳐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어라.”
15일 별세한 현철이 무명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은 그렇게 탄생했다. 1968년 데뷔하여 1982년에야 노래 한 곡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방송출연을 하지 못해서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다.
1987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 KBS <가요무대>가 위문공연을 갔다. 조용필, 나미, 김세환, 주현미, 김연자, 현숙 등 톱스타들 사이에 현철이 합류했다. 현장 근로자들이 ‘앉으나 서나…’의 가수를 보고 싶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후 현철은 승승장구했다. 1988년부터 3년 잇따라 KBS 가요대상과 MBC 10대가
수상을 받았다. 팬들은 첫 대상을 받았을 때 무대 위에서 오열하던 현철을 기억한다. 그는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께 불효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임종을 앞두고 현철은 가족들과 자신의 히트곡 ‘내 마음 별과 같이’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전언이다. 지금쯤 다시 만난 아버지 앞에서 노래라도 한 곡 부르지 않을까.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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