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사이버레커들의 서식지
사이버레커를 처음 실감한 것은, 2022년 12월30일이었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두 달하고 하루 지나서인데, 녹사평역에서 이태원 쪽으로 가는 길에서 추모 문화제를 하는 자리였다. 날씨가 많이 추웠지만 춥다고 말하는 것도 산 자의 투정 같은 생각이 들었다. 추모 문화제가 있기 한참 전부터 행사장 옆에는 딱 봐도 어떤 부류인지 알 만한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현장 중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집회 현장에서도 본 모습이라 그리 낯설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게 누구든 현장을 중계하는 데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페이스북을 통해서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건 현장을 알리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날 만난 유튜버들은 뭔가 남달랐다. 얼굴을 뒤덮은 증오심이 느껴졌는데, 추모 문화제가 시작되자 우리 쪽으로 눈을 번득이고 있다가 정권을 비난하는 말이 나오면 소동을 부리고는 했다. 동시에 언어 충돌 상황을 중계했다.
‘사이버레커’라는 말은 자주 들어봤지만 그 뜻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온라인 공간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를 따라갔다가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평소의 투덜거림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 실제를 갖지 않는 버캐 같은 신조어들은 좀 무시하는 게 여러모로 이롭다는 평소 지론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의 삶이 대도시화되고, 또 테크놀로지에 깊이 의존할수록 언어도 그것을 따라간다는 것은 굳이 그 증거를 댈 필요가 없는 경험적 진실이다. 물론 눈을 떠보니 서울인 세대들은 이해 못할 ‘진실’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서울 바깥이란 곳은 이질적인 타자의 영토니까. 테크놀로지도 마찬가지다. 모든 경험이 디지털 기기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다 보면, 실제 세계가 도리어 환영 같을 때가 있는 법이다. 여기서 인간의 뇌 작용을 들먹이면서 인간의 인식이란 것 자체가 결국 하나의 환영, 주관적인 판타지라고 주장하는 순환론에 빠진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대도시와 테크놀로지가 일으키는 정신의 왜곡을 변호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선정적 ‘클릭 비즈니스’ 정신 파괴
시간이 약간 지난 책이지만 미국의 언론인인 프랭클린 포어는 자신이 쓴 <생각을 빼앗긴 세계>(반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까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인간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고, 그 둘의 결합은 개인을 위협한다.” 여기서 “개인을 위협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 알려진 것을 변형시킨다는 뜻이다.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란 것이 과연 있느냐 없느냐 하는 철학적 물음은 최소한 여기선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유튜브의 선정적인 ‘클릭 비즈니스’가 우리의 마음을 실제적으로 황폐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프랭클린 포어는 “소셜미디어가 거짓과 음모를 확산하고, 무엇이 사실인지에 대한 공통된 합의가 소멸하면서, 권위주의가 등장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체감상 유튜브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며 유튜브를 통해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유해 정보들의 폐해는 민주주의 차원에서도 심각한 일이다.
사이버레커는 다들 아시다시피 이런 새로운 콘텐츠 비즈니스 시장에서 타인의 불행이나 사고, 과오 등을 확대, 확산시키면서 돈을 챙기는 장사꾼이다. 장사꾼이라고 부르기도 아깝지만 어쨌든 이들은 폭로와 고발을 빙자로 타인의 아픔에 소금을 뿌리고, 필요하다면 더 후벼파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행위들이 그들의 호주머니만 두둑하게 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 이상한 정신 질환을 퍼뜨린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단순한 관음증 수준이 아니라 사디즘과 마조히즘 사이에 태어난 변종이라고나 할까. 남이 불행해야 자신이 행복한 것 같은 졸렬함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남의 불행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신종 정신 질환을 뭐라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실제와 환영 교차, 긴장감 가져야
예수가 어떤 광인의 몸에 들어가 있는 귀신을 돼지에게 집어넣은 적이 있는데, 그 귀신은 로마 군대 귀신이었다. 해석자들은 그 마을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의 군단(軍團)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해주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라는 것은 이렇게 몸이 속해 있는 세계와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사이버레커들이 몸담고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 데이비드 하비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같은) 새로운 기술은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적 미래를 약속하지만, 다른 형태의 행동을 수반하지 않을 경우 자본에 의해 착취와 축적의 새로운 형태와 양식으로 흡수되어버린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여기서 “다른 행태의 행동”에는 자연에 대한 관계라든가, 사회적 관계, 일상생활, 정신적 관념 등이 포함된다.(<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 창비) 사이버레커들의 서식지에 대한 긴장과 문화투쟁이 시급하다.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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