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종이·연필 대체하려는 건 위험한 발상”

반기웅 기자 2024. 7. 2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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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교과서 반대 신경과학자
사카이 구니요시 도쿄대 교수
사카이 구니요시 교수가 19일 도쿄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일본 올해부터, 한국 내년에 도입
“생각하기 전 검색하는 풍조 걱정
수준별 맞춤형 학습효과도 회의적
교육 디지털화 능동적 사고 저하
자본과 정치인 검증 없이 속도전”

정부가 내년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한다. 학생들에게 개인별 맞춤 학습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교육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다. 일본은 올해부터 전국 초·중교 영어 수업에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고 있고, 내년에는 수학 등 다른 과목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사카이 구니요시(酒井 邦嘉)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기초과학)는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신경 과학자다. 그는 교육의 디지털화가 아이들의 능동적 사고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9일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사카이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연필과 메모지부터 꺼냈다. 그는 기억력을 기르는 핵심 도구로 ‘종이와 연필’을 꼽았다. 사카이 교수는 “종이 교과서로 학습을 하고 필기를 하면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 어떤 내용을 메모했는지, 받아쓸 때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떠올리게 된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모두 단서로 남아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교과서가 내세우는 수준별 맞춤형 학습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선천성 난독증이 있는 학생의 경우 음성 변환 기능을 활용해 양질의 교육을 접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특수한 사례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실시간으로 더 많은 정보를 줘서 이해를 돕겠다는 건데, 이런 방식은 ‘이쪽에 정답이 있으니 이걸 보라. 여기로 따라오라’는 일방적인 정보 노출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모르는 개념을 그때그때 디지털 화면에서 검색과 클릭으로 습득하는 방식은 편리하지만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빼앗는다. 능동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정답’만 받아먹다보면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검색 정보를 활용한 ‘평론가’는 늘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연구자’가 줄어든 이유다.

사카이 교수는 “생각하기 전에 검색부터 하는 풍조가 일반화되고 있어 걱정이 많다. SNS에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정보들이 집중력을 떨어뜨려 업무 효율성이 낮아진다. 스마트폰 덕분에 능동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편한 필름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보다 뛰어난 ‘작품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이치를 설명하며 ‘생각의 힘’을 강조했다.

사카이 교수는 “작품 사진을 찍는다고 가정해보자. 필름카메라는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다. 한정된 필름 안에서 결과물을 내야 하기 때문에 사진사는 치밀한 촬영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는 무한정 연속으로 찍는다. 일단 찍은 다음 더 나은 사진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과거’의 사진을 놓고 평가할 뿐 ‘미래’의 촬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름카메라는 다르다. 앞으로의 촬영에 대해 계속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자유롭지 않고 불편할 때 뇌를 사용한다. 한정된 자원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게 사카이 교수의 지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과서에 AI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위험한 발상이다. 그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AI를 작문에 활용해 자신의 문장을 쓰지 못하고 있다”며 “AI 의존도가 높아지면 인간의 생각도 AI가 대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취학 아동들의 디지털 콘텐츠 노출 빈도가 높아지는 것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유아기에도 나름의 사고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정보를 습득해야 하는데 유튜브는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주입한다. 사카이 교수는 “부모가 그림책을 읽어주고 듣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 역시 뇌에 중요한 기억으로 자리 잡는데 이런 소통은 유튜브로는 절대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디지털을 수단으로 경제를 활성화려는 자본과 새 정책 도입을 업적으로 삼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실효성과 부작용에 대한 검증 없이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카이 교수는 “현 세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스스로 비교해 선택할 수 있었지만 지금 아이들은 선택권이 없다”며 “역사를 통해 훌륭한 학습 도구로 증명된 종이와 연필을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로 대체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도쿄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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