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고령화시대, 페달 블랙박스 도입해야

윤정길 기자 2024. 7. 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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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급발진 의심 사고 잇달아…운전자 대다수가 ‘고령’ 공통점, 면허 반납·갱신 제한 등 주장도
원인 규명 통해 논란 해소 필요…국회, 법 개정안 신속 처리해야

최근 도심에서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에서 한 차량이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 등 대형차량 운전 경력 40년의 60대 운전자(68)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도 서울에서 70대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주차된 차들을 들이받은 후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했다.

이런 사고 뒤에는 항상 ‘급발진’과 ‘운전 미숙’ 주장이 대립한다. 급발진 의심 사고의 공통점은 대부분의 운전자가 고령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을 통해 운행을 제한하거나 면허 갱신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 60, 70대 운전자의 주요한 이동 수단을 제한하자는 발상은 자칫 특정층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우려도 크다.

고령화 도시 부산은 지난달 말 기준 부산지역 고령 운전자가 32만5506명으로, 전체 운전자 203만2635명의 16%가량이다. 이마저도 매년 2만 명씩 느는 추세라 면허 반납이 없다고 가정하면 2030년에는 최대 45만 명까지 고령 운전자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급발진 의심 사고와 고령 운전자 간 상관 관계를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페달 블랙박스’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운전석 아래 장착하는 페달 블랙박스는 운전자가 엑셀(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중 어디를 밟았는지 입증하기 위한 장치다. 지난해 11월 65세 운전자가 몰던 전기택시가 담벼락을 들이 받는 사고를 냈다.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수 차례 밟았지만 작동하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했다. 당시 차량에는 페달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었는데 경찰이 영상을 분석한 결과, 운전자는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반복적으로 밟은 영상이 찍혔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운전미숙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처럼 페달 블랙박스 도입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 원인이 운전 미숙 또는 차량 결함으로 밝혀진다면 대책도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 상당수 사고가 차량 결함이 아닌 운전 미숙으로 밝혀진다면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당위성을 얻게 될 것이다.

과거 차량의 급발진 의심 사고는 기계적인 결함일 가능성이 높지만, 최근에는 차량 첨단화로 전기전자시스템 비율이 높아지면서 원인 규명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더우기 아직까지 국내에서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없다. 2018년부터 지난 6월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급발진 의심 사고로 감정을 의뢰한 경우는 지난해 117건을 포함해 모두 471건에 달한다. 지난 4월 출고된 지 한 달도 안 된 신차를 몰다 전복 사고를 낸 경남 함안의 60대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과수는 EDR(사고기록장치)와 블랙박스 등 전복 차량 전체를 분석한 결과 운전자가 사고 직전 가속 페달을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또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급발진 의심 사고의 원인 규명 책임이 운전자에게 있다. 국과수도 규명하기 어려운 급발진 원인을 운전자가 찾아야 하는 셈이다.

완성차 업계와 정부는 페달 블랙박스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페달 블랙박스 설치로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가 확인되면 제조사가 엄청난 리스크를 안아야 하기 때문에 회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완성차 업계는 EDR 등으로 사고 원인을 분석할 수 있고,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려면 설계를 변경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역시 자동차의 가격 인상 요인이 될 수 있고, 수입차에 같은 규제를 적용하면 통상마찰로 이어질 수 있는 등 각종 부작용을 말한다. 외국에서도 페달 블랙박스 설치가 의무화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 운전자가 연관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이제 외면하기 힘든 문제가 됐다. 사고가 날 때마다 원인을 두고 사회적 혼란과 특정세대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 것보다는 명확한 실체 규명이 우선이다.


때마침 지난 9일 국민의힘 이헌승(부산진을) 의원은 ‘자동차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자동차 제조사의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시행시기는 기술개발 기간을 고려해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이며, 신규 제작차량에만 적용된다. 22대 국회에서는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 법안이 통과돼 더 이상 급발진 사고에 대한 논란이 없기를 바란다.

윤정길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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