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의료 청문회를 지켜보며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2024. 7. 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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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지난달 의료계 비상상황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열렸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근거와 집행과정에 대한 문제가 집중 제기되었다. 보건복지부의 답변은 미리 예상이 되었다. 3개의 보고서 및 여러 전문가의 논의로 10년 후에 의사 1만명이 부족하니 한 해 2000명씩 5년간 늘리면 된다는 것이다. 석유 시추가 성공할 확률이 20%이니 5번 시도하면 1번은 석유가 나온다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이미 고등법원 판결에서도 3개의 보고서에 2000명 증원의 근거가 미흡하다고 지적받았고, 참고했다는 다른 근거자료 제출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다. 근거가 없는 것이다. 계속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었다는 대답만 앵무새처럼 이어졌다. 그러면서 더 과학적인 대안을 의료계가 가져오면 협의하겠다고 한다.

누가 최종적으로 2000명 증원을 결정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개인적’ 결정을 했고 대통령실에 보고했다고 했다. 이 주장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59.9%로 사실이라고 믿는 국민(24.1%)의 배 이상이다. 증원발표 전에 의료현안협의체에서 28번이나 회의를 거쳤다고 한 정부의 설명이 무색하게 관련 회의록조차 없다. 증명할 수 없는데 2000명 증원에 관한 논의를 심도있게 했단다. 결국 증원은 의료계 누구와도 구체적인 협의가 없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졸속으로 밀어붙였던 것이다.

청문회 질의 중 한 의원이 ‘바이탈 뽕’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2018년 필자가 본 칼럼(멸종위기의 흉부외과)에서 기고했듯이 죽어가던 환자가 내 손을 통해 살아나는 과정을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그 기억은 흡사 중독성 강한 마약과도 같아서 또다시 비슷한 상황의 환자에게 정신없이 매달리게 한다. 환자에게 집중하는 동안에는 배고픔 목마름 피곤함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과거에 경험했던 그 쾌락만을 갈구하는 것이다. 바이탈(생명)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의사들이 느끼는 최고의 자기만족이며, 생명에 대한 무한책임, 경외감이 바로 ‘바이탈 뽕’이다.

정부는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아직도 의사를 악마화하여 국민과 편가르기를 하고, 갖은 행정명령으로 압박하여 이전 그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했던 ‘의사 증원’을 해냈다는 성과물을 얻고 싶은 모양이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운 정부가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모두 한심할 뿐이다. 저임금, 살인적인 근무환경에도 ‘바이탈 뽕’에 빠져보려는 필수의료과와 전공의를 ‘낙수과’ ‘의새’로 만들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더 이상의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전공의들은 대학병원 전문의 과정과 바이탈 뽕을 포기하고 사직한것이다. 단순 파업이 아니다.

증원으로 제대로 된 여건을 갖추지 못한 곳에서 부실교육을 받아야되는 의대생들도 수업을 거부했다. 며칠 전 교육부는 ‘의과대학 학사 탄력운영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집단유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실한 교육을 받아도 의대생들을 최대한 다음 학년으로 진급시키라는 꼼수이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은 해마다 의대의 교육수준을 평가하여 인증함으로써 의료의 질을 관리한다. 갑작스럽게 큰 폭의 의대증원을 감당할만한 교수진, 시설의 확충이 어려운 의대는 기존 의평원의 인증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서남대의 경우처럼 의사국가고시 응시불가, 폐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인증기준을 완화하려 한다. 의대 2000명을 증원해도 의료의 질 저하는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호언장담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 늦지 않았다. 잘못된 정책임을 인정하면 된다. 이 혼란을 야기한 관련책임자를 징계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면 된다. 이미 신입생 배정이 끝나 사회혼란이 야기되니 어쩔 수 없다고 해서는 안된다. 한 해의 혼란은 향후 6, 7년간 이어질 대혼란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의료의 둑은 이미 무너지고 있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 그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완전히 무너진 후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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