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수의 그림산책] 김정헌의 ‘밥이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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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이 있는 마을은 정읍의 '황새물'이라 불리는 곳이다.
김제 원평을 이웃하고 있는 이 외진 작은 마을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이 살던 마을이란 이야기이다.
특히 아버지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 전설을 이야기하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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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이 있는 마을은 정읍의 ‘황새물’이라 불리는 곳이다. 김제 원평을 이웃하고 있는 이 외진 작은 마을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이 살던 마을이란 이야기이다. 어느 집이나 그렇듯 집안 어른들은 이 위대한 인물을 자식 교육에 이용하곤 했다. 특히 아버지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 전설을 이야기하곤 하셨다. 괜히 자식의 기를 살려주려 하는 얘기인 줄 알고 무시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학계의 연구 자료를 보다 정말로 이 마을이 실제 전봉준 장군이 젊은 시절 몇 년간 살았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숙연해진 적이 있다.
고향 정읍 주변엔 늘 종교적 향취가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대찰 금산사가 있고, 증산교의 본산 오리알터 등 여기저기에 종교적 상징물이 널려 있다. 우리 집 주변의 전봉준 장군과 증산 강일순, 보천교 차경석 이야기는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백제시대 이후 호남 지역에 유행한 미륵 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고향이 내려준 기운은 성장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민족주의를 심어주었고, 훗날 민중적인 문학·미술 등에 경도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사회 현상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가지게 된 것도 고향이 준 기억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 한동안 나를 지배한 것은 1980년대 미술계의 주요한 사건이었던 ‘현실과 발언’ 동인의 등장이었다. 당시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진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미술 운동을 한 일군의 미술가들은 나의 우상 같은 존재였다. 이들의 현실 비판적인 작품 내용은 기존 미술가들과는 다른 마력이 있었다. 이른바 민중미술은 자유에 족쇄를 채운 암울한 시대와 대비되며 마치 살아있는 신화처럼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들의 작품을 볼 때면 신성한 종교적 대상을 대하는 것 같았고,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현실 비판적 내용은 고향 마을의 미륵 사상처럼 비장한 감을 주었다.
세월이 지나며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던 작가들을 한 사람 두 사람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 어떤 구원의 손길을 마주한 듯한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때 마침 우상 같았던 작가 중 한 명인 화가 김정헌(金正憲, 1946~ )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설레는 만남을 뒤로하고 작업실을 방문하고 싶다는 간곡한 애원 끝에 가평 두밀리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침 선생은 7, 8미터에 이르는 대형 작품 ‘동학농민혁명’을 그리고 있었다. 내 삶을 에워싸고 있는 동학의 그림자가 여기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한동안의 이야기 끝에 작업실 방문 기념으로 작은 그림 한 점을 건네주신다. 아주 작은 나무판에 한 사람이 앉아 밥상을 마주하고 있는 내용이다. ‘밥이 하늘이다’는 제목을 적었다.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이 말한 그 유명한 경구이다. 주인공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인 듯하다. 그날 이후로 책상머리에 두고 마치 부적처럼 바라본다.
코로나19 이후 전국 어느 곳이나 빈 집, 공실이 늘었다. 세상 사람의 삶이 팍팍하다.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지 100년이 훨씬 지났지만, 사회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여전히 ‘밥이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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