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눈부신 소박함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3차원의 달항아리가 2차원의 캔버스에 들어 앉았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광의 달항아리는 캔버스보다 아주 조금 돌출해 있는데, 이러한 입체감과 질감을 살리기 위해 작가는 백색 돌가루와 젯소(gesso·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 재료)를 섞어 바른 후 사포로 문지르는 행위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한다.
2m에 달하는 캔버스를 가득 채운 빙렬 뒤에 보일 듯 말듯 숨겨진 달항아리는 소박함을 넘어 순수로 다가간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소울아트스페이스 9월28일까지
3차원의 달항아리가 2차원의 캔버스에 들어 앉았다. 밤하늘에 둥실 뜬 보름달 같은 차분함과 소박함은 그대로인데 무광의 옷을 입은 항아리는 더 따스하다.
다 같이 하얗지만, 그렇다고 다 같은 흰색은 아니다. 오히려 실물에서는 보기 어려운 수많은 빙렬(氷裂·도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생기는 균열)이 캔버스에서 새롭게 태어난 달항아리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오는 9월 28일까지 부산 해운대 갤러리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 ‘Karma: All is Well’(이하 카르마)을 여는 최영욱 (60)은 달항아리를 ‘그리는’ 작가다. 최영욱 작가는 2000년대 중반 국내에서의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우연히 조선 시대 백자대호(달항아리)와 조우하게 된다. 외국에서 만난 가장 한국적인 ‘그것’은 품 속으로 안기듯 들어왔고, 그때부터 달항아리에 빠져들게 됐다.
최영욱의 작업은 수행에 가깝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광의 달항아리는 캔버스보다 아주 조금 돌출해 있는데, 이러한 입체감과 질감을 살리기 위해 작가는 백색 돌가루와 젯소(gesso·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 재료)를 섞어 바른 후 사포로 문지르는 행위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한다.
이 같은 그의 ‘수행’은 빙렬에서 절정에 달한다. “손바닥만 한 면적을 완성하는 데도 반나절이 걸린다”는 그의 설명처럼 매우 가느다란 붓 끝에서 완성된 제각각의 갈라짐은 작가 자신을 극한의 집중력의 세계로 몰아넣은 결과물이다. 그가 2010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기획전 제목인 ‘카르마’는 이 무수한 빙렬의 갈라짐과 맞닿아있다.
최 작가는 이에 대해 “한쪽 부분에서 시작해서 결국은 항아리를 꽉 채우는 것이 마치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수많은 갈라짐이 만났다가 끊어지고 다시 연결되는데, 사람 사는 인생 길과 비슷하다 ”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트페어 인기 작품으로 꼽히는 기존 달항아리에서 더 나아간 새로운 시도도 만날 수 있다. 항아리를 아주 깊이 클로즈업해 그 위에 얹힌 빙렬로만 하나의 캔버스를 가득 메우기도 하고, 상식을 깨는 검은 달항아리도 있다. 2m에 달하는 캔버스를 가득 채운 빙렬 뒤에 보일 듯 말듯 숨겨진 달항아리는 소박함을 넘어 순수로 다가간다.
서성록 안동대 명예교수는 그의 작품에 대해 “지금의 뉴미디어는 감각적이고 소비지향적이지만, 최영욱의 작품은 흥분하기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껍데기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붙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