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이름 없는 이야기야”…대전서 ‘소외된 것 모든 것’ 표현하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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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전화만 받아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노트북 화면을 봐도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그토록 꿈꾸던 직장이었는데, 출근길이 지옥문 같더라고요. 구겨진 저를 다시 편 건 결국 사람이었어요. '예린아' 부르며 '괜찮다', '잘하고 있다'고 토닥이며 함께해준 고마운 사람들이요."
관객이 직접 무대에 나서는 건 아니고, 사전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연출가인 한씨가 당일 공연에서 이야기를 전하면 배우와 악사가 즉흥 연기·연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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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전화만 받아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노트북 화면을 봐도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그토록 꿈꾸던 직장이었는데, 출근길이 지옥문 같더라고요. 구겨진 저를 다시 편 건 결국 사람이었어요. ‘예린아’ 부르며 ‘괜찮다’, ‘잘하고 있다’고 토닥이며 함께해준 고마운 사람들이요.”
“이 이야기의 제목을 붙인다면, 무엇일까요?” “음…‘다리미’요. 내 구겨진 마음 펴준 다리미….”
지난 19일 저녁 대전 중구 선화동의 ‘오토’(Owtto) 연습실에 도착했을 때도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자신이 없었다. 취재할 때 “기자의 이야기로 연습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고 가는 길이었다. 오토는 ‘우리 사회 소외된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대전의 여성청년창작팀이다. 오토의 구심점인 연출가 한은성(29)씨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연극치료사다. 한씨가 서울에서 활동하다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오토의 이름을 걸고 첫 공연을 올린 건 2021년이다. 2022년엔 여성 중증장애인 박진희씨가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하는 자전극 ‘진화의 꿈’을, 지난해엔 여성 노동자의 삶을 담은 1인극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를 공연했다.
오토가 올해 하려는 이야기는 ‘퀴어’(성소수자)다. 관객의 사연을 받아 대본 없이 즉흥 연극을 만드는 ‘플레이백 시어터’ 방식으로 성소수자 이야기인 ‘이건 이름 없는 이야기야’를 무대에 올린다. 올해 공연은 한씨(연출)를 비롯해 배우 강다민(29)·전재민(26)·황윤결(25)·조소영(30)과 악사 송나츠(43), 이래숙(이름 말하는 사람)·소피(조연출) 등 8명이 함께 만든다. 관객이 직접 무대에 나서는 건 아니고, 사전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연출가인 한씨가 당일 공연에서 이야기를 전하면 배우와 악사가 즉흥 연기·연주를 한다.
취재 당일 ‘한시간 안에 끝낸다’는 기자의 목표는 “자 이제, 예린님의 하루 보시죠”라는 한씨의 손짓과 함께 시작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순간 바로 무너졌다. 어느새 내 삶의 아픔·기쁨·고마움에 대해 말하고 있었고, 그 이야기는 바로 눈앞에서 ‘놀라운 연극’이 됐다. 바닥을 기고 구르면서 시뻘건 얼굴로 울며 절규하는 배우의 연기를 볼 땐, ‘마음을 본다’는 말의 실체를 목격하는 듯했다.
연습이 끝나고 한씨는 “이번 공연은 ‘치료’라기 보단 ‘치유’에 가깝다. 의사가 상처를 도려내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하는 것이 치료라면, 치유는 광범위한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르는 것이다. 소외된 이들의 삶을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그 당사자뿐 아니라, 무대를 보는 많은 이들의 비슷한 상처를 건드리는 동시에 위로와 지지를 보내는 일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배우들에게도 ‘소외된 것을 마주하는 경험’은 특별한 듯했다. 전재민씨는 “7월부턴 관객을 초대해 즉흥연기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그들의 삶의 무게를 느끼고 공감하며 빠져든다. 눈물이 나오는 순간에도 정신을 차리며 당장의 연기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곤 하는데, 그런 순간을 통해 연기자·사람으로서 더 성장한다고 느낀다”고 했다. 이들의 공연은 오는 8월6∼11일 유성구 도룡동 복합문화공간 ‘플랜에이’에서 선보인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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