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두 영국 총리의 품격
국민에 대한 최고의 봉사
우리 정치의 품격은 실종
"퇴임하는 총리 리시 수낵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가 영국의 첫 번째 아시아계 총리로 봉직한 것 자체가 큰 업적이며, 그 과정에서 요구된 그의 특별한 노력을 누구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 그의 리더십에서 보인 헌신과 노고를 전적으로 인정합니다."
지난 7월 5일 영국 신임 총리 키어 스타머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 앞에서의 취임 일성은 전임 총리 수낵의 공적에 대한 정중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찬사였다. 전날 총선 압승으로 14년 만에 집권 여당이 된 노동당 대표로서 고무된 표정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연설에는 경쟁 상대에 대한 최고의 존중과 세심한 배려가 담겼다. 장소를 의회로 옮겨 이어진 스타머의 취임사에는 그가 생각하는 의회정치의 비전이 분명히 드러났다.
"우리는 정치의 선한 영향력을 보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정치적 견해차가 무엇이든 이제는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국가쇄신이라는 공동의 노력으로 단결해 새로운 의회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의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스타머 총리에게 의회정치의 목적은 집권 자체가 아니고 선한 영향력이며, 국민에 대한 최고의 봉사다. 며칠 전까지 집권 보수당 대표이자 총리였지만 지금은 야당 대표로 의회에 선 수낵의 연설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총리님의 당선을 축하합니다. 총리께서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만큼 우리 의원 모두가 총리님과 가족에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총리와 제가 지난 선거 기간에 그랬던 것처럼 격렬하게 논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존중합니다. 의회에서 어떤 격론이 있더라도 여기 계신 의원 모두는 유권자와 국가를 섬기는 그리고 우리가 명예롭게 믿는 원칙들을 발전시키는 열망으로 동기부여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 의원들은 주어진 역할을 항상 감사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14년 집권을 마감한 보수당을 재건하는 중요한 임무 그리고 국가의 공식 야당으로서 중대한 책무를 전문적이고 효율적이며 겸손하게 수행하려 합니다. 바로 지금이 국민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또 다른 일을 할 기회라는 점을 기억하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합니다."
수낵은 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스타머 정권 출범을 축하하면서, 동시에 이제는 야당 대표로서 또 다른 정치의 출발을 알렸다. 의회정치 선진국 영국의 정치라고 늘 우아한 것만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궁전 의사당 양쪽 벤치에 앉은 여야 의원들은 늘 양보 없는 격렬한 토론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야 의원들의 환호와 야유의 함성도 대단하다. 여기에 섬나라 특유의 매우 과격한 블랙유머까지 더해지면 가관인데, 오죽하면 1979년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가 등원했을 때 "정신병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붙였을까.
그러나 그건 그거고 정치는 정치다, 의원들 모두가 공감하는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철저하게 국민을 위한 공적 봉사(public service)다. 보수당과 노동당이 선명한 비전과 입법경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 영국 정치의 존립 이유다.
영국 의원들은 탄핵이라는 극단적 단어를 그렇게 쉽게 입에 담지 않는다. 온 국가가 들썩이는 고비용 선거를 하지도 않는다. 선거가 끝나고 100일이 되었는데 정식 개원도 하지 못하고, 당 내부에서 공천과 사천 논쟁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일은 없다.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지도 않고, 카톡 내용과 댓글팀 존재 여부가 정쟁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의회가 사법부의 판단에 불만을 품고 검사를 쉽게 탄핵하려 들지도 않는다.
정권교체는 부드럽게 이루어지고, 의회는 신속하게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한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위해 뛰지만,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위해 일한다는 소명의식이 영국 의회정치의 자산이다. 이것이 두 총리가 보여준 정치문화의 품격이다. 우리 정치의 품격은 어디에 있는가.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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