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만난 日야쿠쇼 고지 "한일, 영화로 좋은 교류 이어가길"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송강호(57)와 야쿠쇼 고지(68)는 각각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로 꼽힌다.
송강호는 '브로커'(2022)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고, 야쿠쇼는 '퍼펙트 데이즈'(2024)로 제76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1년여 만에 서울에서 다시 만나 영화와 연기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21일 오후 종로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퍼펙트 데이즈' GV(관객과의 대화)에서다.
야쿠쇼는 송강호가 주연한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을 꼽으며 "유머가 있으면서 긴박감이 넘치는 작품"이라며 "영화 초반부 송강호 배우가 날아 차기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폭소를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강호 배우의 연기를 보면 그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유머와 진지함을 오가는 간극이 매력적인 배우"라고 평가했다.
송강호는 '우나기'(1999)에서 야쿠쇼가 연기한 주인공 야마시타가 아내를 살해하고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며 "그 속에서 주인공의 고통과 연민을 그만한 깊이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전 세계에 야쿠쇼 밖에 없다. 지금도 봉준호 감독과 만나면 가끔 그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야쿠쇼는 이날 송강호와 대화하면서 자주 농담하거나 파안대소하는 등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봉 감독이 과거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대담할 때 만화가 밑에서 일하면서 끊임없이 괴롭힘당하는 조수 역에 본인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송강호 배우가 만화가 역을 맡아 내게 날아 차기를 하는 장면이 머리를 스쳐 갔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퍼펙트 데이즈'는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일본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노동자 히라야마(야쿠쇼 분)의 이야기다.
히라야마의 일상을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그리면서 잔잔한 감동을 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일 국내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는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관객을 모으며 5만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벤더스 감독이 도쿄의 공중화장실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단편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장편을 연출하겠다고 역제안하면서 '퍼펙트 데이즈'가 탄생했다.
야쿠쇼는 "벤더스 감독이 아닌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찍었다면 아마 송강호 배우가 히라야마 역을 맡았을 것"이라며 "빨리 움직인 사람(본인)이 이긴 셈"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송강호는 '퍼펙트 데이즈'에 대해 "연기의 깊이와 영화가 추구하는 삶의 아름다움의 깊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가 출근길에 차를 운전하면서 감정이 북받친 듯 웃음과 울음이 섞인 표정을 짓는 장면은 야쿠쇼가 보여준 최고의 연기로 꼽히기도 한다.
송강호는 그 장면을 찍을 때 벤더스 감독이 야쿠쇼에게 뭐라고 주문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야쿠쇼는 "대본엔 '히라야마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 같지만, 그가 슬픈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스스로 선택한 일터로 향한다'라는 시적인 글귀가 있었다"며 "벤더스 감독이 '울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웃는 게 나으려나'라고 하길래 '열심히 해보겠다'며 연기에 임했다"고 돌아봤다.
이 장면에선 니나 시몬의 노래 '필링 굿'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야쿠쇼는 촬영 현장에서 이 노래를 실제로 틀어놓고 연기했다며 "(노래에 담긴) 시몬의 영혼에 영향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속 히라야마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구식 필름 카메라로 찍는 것을 즐긴다. 야쿠쇼는 "젊은 시절 점술가가 사진작가가 되면 성공할 거라고 하길래 비싼 카메라를 샀는데, 기계치라 그런지 초점이 잘 안 맞았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만 사진을 찍는다"며 웃었다.
야쿠쇼는 배우의 삶에 대해선 "촬영이 끝났을 때 '다음엔 더 잘해야지'라는 생각에 연기를 계속하다 보니 40여년이 흘렀다"고 했고, 송강호는 "배우는 보이지 않는 완벽함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과정에 있는 직업"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야쿠쇼는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가까운 두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 영화를 통해 좋은 교류를 이어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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