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억제와 한여름 밤의 꿈 [한겨레 프리즘]
권혁철 | 통일외교팀장
동상이몽. 같은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이다. 이 말은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는 척을 하지만 속으로는 서로 딴생각을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최근 확장 억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태도가 동상이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공동지침)을 통해 마침내 한·미가 함께하는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이 공고히 구축됐고, 한-미 동맹은 명실상부한 핵기반 동맹으로 확고하게 격상됐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은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지침을 채택했다. 윤 대통령은 공동지침에 대해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미국의 핵자산에 한반도 임무를 특별 배정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어떤 종류의 북핵 위협에도 기민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구축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도 “미국 핵자산에 북핵 억제와 북핵 대응을 위한 임무가 배정될 것이라고 문서로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핵 발사 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 핵무기 탑재 전략폭격기 등 미국의 3대 전략핵무기의 한반도 상시 배치와 작동을 통해 24시간 확장억제가 일체형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국의 설명은 많이 다르다. 비핀 나랑 미국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는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특정 임무나 목표에 특정 무기를 배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랑 차관보는 미국 쪽 확장억제 실무 책임자이고 공동지침에 서명했다.
나랑 차관보는 “윤석열 대통령이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미국의 핵자산에 한반도 임무를 특별 배정한다고 말했는데, 예를 들어 미국 특정 전략핵잠수함(SSBN)이 한반도만 감시하도록 지정한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대해 “아니요”라고 부인했다. 이어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핵 공격이나 전략적 공격이 있을 경우 모든 우발 상황에서 핵전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약속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체계에서는 특정 임무나 목표에 특정 무기를 배정하지 않는다. 어떤 자산을 미리 배정하면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한·미가 함께하는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에 대해서도 양국의 설명은 엇갈린다. ‘한·미가 함께한다’는 말에 대해 김태효 1차장은 “기존의 확장억제가 미국이 결정하고 제공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한반도 핵운용에 있어 우리의 조직, 우리의 인력, 우리의 자산이 미국과 함께하는 확장억제로 진화됐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도 “이제는 한국이 당당한 파트너로서 미국과 핵·재래식 통합의 공동기획과 실행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나랑 차관보도 지난 6월 핵협의그룹 회의 뒤 “한·미가 동등한 파트너로서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확장억제 노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랑 차관보는 ‘한국도 동등한 파트너’라고 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미국 대통령만이 미국 핵무기의 사용을 승인할 수 있다”며 “제가 동등한 파트너라고 말하는 것은 미국의 핵 작전에 대한 한국의 재래식 지원을 조율하는 능력을 높였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핵 공격에 나선 미국 폭격기를 한국 공군이 호위하거나 급유하는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에 기자가 “계획과 실행의 단계에서 한국이 의견을 낼 수 있게끔 제도화한 것이냐”고 묻자 나랑 차관보는 “과정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다만 보유한 핵무기의 실제 사용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에게만 있다는 단서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이 일체형 확장억제를 미국 핵무기를 공동으로 운용하는 ‘핵 공유’로 여기자, 나랑 차관보가 미국 국영방송(VOA)에 나와 ‘선을 넘지 마라’고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나랑 차관보 인터뷰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미국 핵무기는 미국 것이다. 한국은 거들 뿐이니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깨라’가 아닐까 싶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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