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뼈를 깎은 두산, 위기 때마다 '변신 DNA' 발휘
1896년 '두산의 모태' 포목상
화장품 '박가분' 대규모 생산
맥주 수탁 판매로 사업 확장
포목상 정리후 OB맥주 재창업
소비재산업, 100년 성장 한계
1996년 중장비 중심 대전환
OB맥주 등 주력사업 전부 팔고
한국중공업·대우종합기계 인수
'승자의 저주' 불렸던 밥캣
2007년 당시 최대 49억弗 인수
금융위기로 2년간 2.5조원 적자
2010년 업황 부활후 '캐시카우'로
“두산은 ‘사업’보다 ‘기업’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2019년 10월 2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공과대 건설산업최고전략과정(ACPMP) 조찬 포럼. 두산가(家) 4세인 박태원 당시 두산건설 부회장은 ‘두산의 변신: 소비재(B2C)에서 산업재(B2B)로’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이다.
박태원 전 부회장은 이날 두산이 변신에 나선 이유를 ‘100년 기업 병(病)’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업력이 오래된 기업일수록 계속된 성공에 자만심이 생겨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일이 많다”며 “두산은 ‘성공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1세대 포목상, 2세대 OB맥주를 중심으로 한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기업, 3세대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간 거래(B2B) 기업을 거쳐 4세대에 새로운 변신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발표한 사업 재편 계획은 두산이 수년간 준비해온 변화의 결과물이다. 로봇 등 ‘스마트머신’과 원자력·수소 등 ‘청정 에너지’, 반도체 등 ‘첨단소재’를 그룹의 미래로 삼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변화 DNA’가 몸에 밴 두산의 세 번째 변신이 시작됐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127년 역사의 최고(最古) 기업
두산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1896년 포목점인 ‘박승직상점’으로 출발했으니 올해로 127세가 됐다. 당시 잘나갔던 상점과 이름난 거상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하나둘 사라졌고 두산 하나가 살아남았다.
박승직 창업주는 포목점이 자리를 잡자 첫 번째 변신에 들어갔다. 외모를 가꾸려는 수요가 늘어나는 트렌드를 포착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박가분’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하루에 4200원(당시 쌀 700가마에 해당)어치나 팔렸다. 두산은 박가분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유통업에서 제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맥주 사업도 이 무렵 시작했다. 박 창업주는 일본 기린맥주가 세운 소화기린맥주(훗날 OB맥주)에 소액주주로 참여하는 동시에 기린맥주 수탁 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후계자인 박두병 회장은 두산그룹 기틀을 짰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국 군정 소유가 된 소화기린맥주를 1951년 불하받아 두산그룹의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소비재 기업에서 인프라 사업으로
100년 넘게 소비재 기업으로 성장해온 두산이 두 번째 변신에 나선 건 1990년대 들어서다. “그동안의 성공에 취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소비재 사업의 변화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터져 나온 직후였다. 29개 계열사(1998년 기준)를 거느렸지만 매출이 3조원대에 머무르며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찾은 업종이 인프라 등 중공업 분야였다. B2C 기업이 B2B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의미였다.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소비재보다 중장기 전략에 따라 차근차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중공업이 보다 유망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박용곤 회장은 당시 “선친(박두병 회장)이 과감하게 창업주가 일으킨 포목상을 버리고 동양맥주(현 OB맥주)로 재창업한 것처럼 소비재를 접고 인프라 위주의 글로벌 기업이 되자”고 했다.
두산은 1996년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도움을 받아 소비재를 버리고 중장비·발전 중심의 중후장대 기업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에 나섰다. 변신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네슬레, 한국3M을 매각하고 그룹의 ‘얼굴’이던 OB맥주와 코카콜라, 버거킹, KFC 등을 차례차례 정리했다. 이 자금으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꾼 사례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흔치 않다.
채권단 관리까지 가기도
그렇다고 두산이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2007년 인수한 두산밥캣은 한동안 그룹의 큰 짐이었다. 두산은 당시 국내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인 49억달러(현 환율 기준 6조7000억원)를 주고 미국 기업 밥캣을 사들였다.
하지만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두산은 ‘승자의 저주’에 시달렸다. 캐시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두산밥캣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부족한 인수 자금을 감안해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M&A한 게 화근이었다. 금융위기 탓에 이자 비용이 크게 늘자 국내 금융사의 신디케이트론으로 자금을 막아야 했다.
금융위기가 실물 경기에 영향을 주면서 영업 상황도 크게 악화했다. 미국 노스다코타주 비즈마크 공장을 닫는 등 자구 노력을 했지만 2008년과 2009년에만 2조5000억원 적자를 냈다. 모회사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라코어)가 1조원을 투입하고 2010년부터 업황이 살아나면서 두산밥캣은 ‘효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두산밥캣이 살아나자 다른 위기가 두산을 덮쳤다. 두산건설 등 주요 계열사 실적이 악화하며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휩싸인 것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4월 두산그룹은 3조원 규모 자구책을 채권단에 내놨다. 그렇게 서울 동대문 의류상가 메카인 두산타워, 두산솔루스, 두산모트롤BG, 골프장 클럽모우CC 등을 떠나보냈다. 두 번째 변신의 핵심 역할을 한 두산인프라코어 역시 HD현대그룹에 내줬다.
박정원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는 두산퓨얼셀 지분 전량(당시 5740억원 규모)을 무상으로 두산에너빌리티에 증여하는 등 자구 노력에 동참했다. 이후 1년10개월 만에 채무 상환을 완료하고 290.7%이던 ㈜두산 부채 비율은 3월 말 기준 154.6%까지 내려갔다.
세 번째 변화는 스마트머신 기업
채권단 관리를 졸업한 지 2년 만에 두산은 사업을 재편해 세 번째 변신을 시작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붙이는 게 핵심이다. 미래 유망 산업인 로봇 분야에 힘을 주기 위해서다. 모회사 두산에너빌리티가 흔들리면 두산밥캣까지 영향을 받는 구조를 바꾸려는 측면도 있다. 두산은 두산밥캣이 기존 강점인 동력 장치에 로봇과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을 붙여 경쟁력을 키울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독립 회사로서 자립성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17일 체코 원전 수주로 수년 동안의 일감을 확보했다. 또 더 이상 그룹 내 중간 지주회사가 아니라 청정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M&A 등 확장에 나설 예정이다.
김우섭/성상훈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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