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사르코'와 노후 돌봄 공포

정영현 기자 2024. 7. 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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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현 성장기업부장
고령자 급증에도 돌볼 노동력 공급 감소
수급 개선 위해 외국인력 확보는 필수
일본처럼 선제 대응, 좌고우면 말아야
[서울경제]

이달 17일(현지 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비영리단체 ‘더라스트리조트’가 안락사 조력 기계 ‘사르코(Sarco)’의 실물을 외부에 공개했다. 석관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사르코파구스(sarcophagus)’에서 이름을 딴 사르코는 한 사람이 들어가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캡슐 형태 기계다. 안락사를 선택한 이가 기계 안에서 스스로 질소 투입 버튼을 누르면 저산소증으로 수십 초 내에 사망한다고 한다. 사르코 공개 소식은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인 스위스를 넘어 전 세계 각지로 타전됐다. 국내에서도 신문·방송은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회자됐다. 한국에서는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기계 도입 자체가 불가능하고 생명 존엄성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가치관과도 크게 배치되지만 그럼에도 세간의 관심은 컸다.

한국인들이 사르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정말 죽고 싶어서일까. 뉴스 댓글과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사람들은 익명을 빌려 슬픈 속내를 드러냈다. ‘내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돌보겠지만 내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존엄성을 잃은 채 방치되고 싶지 않다’ 등의 심경을 전했다. 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외롭고 끔찍하게 살까 두렵다는 게 사람들의 진심이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기준 0.72명으로 전 세계 최하위다. 반면 기대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2025년 1000만 명을 돌파하고 2035년에는 1500만 명을 넘어선다. 노후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중요한 건 역시 연금이나 저축·보험 같은 은퇴 후 소득 확보 여부다. 하지만 경제력만큼이나 돌봄을 제공해줄 ‘믿을 만한’ 존재의 유무 역시 중요하다. 특히 그간 한국에서는 유교 문화에 기반해 노인 돌봄을 공적 영역이 아닌 사적 영역, 즉 개별 가정에서 대부분 수행해왔는데 이 때문에 현재의 인구구조 및 세대 가치관의 변화가 노후 돌봄 공백을 낳을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니다. 실제 올 3월 한국은행이 내놓은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돌봄서비스직 노동 공급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 명에서 2042년 최대 155만 명까지 커질 수도 있다. 고령 인구 증가로 돌봄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반면 이를 받쳐줄 노동력 공급은 계속 줄어드는 탓이다.

정부나 정치권도 이 같은 현실을 소홀히 대하지 않고 있다. 대선 당시부터 간병을 비롯해 노후 돌봄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를 통해 간병서비스 체계를 종합적으로 구축하겠다고 다시 한번 약속했다. 22대 국회가 가까스로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관련 법안도 벌써 발의됐다. 노후 소득뿐 아니라 돌봄까지 안정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늘 그렇듯 속도다. 노후 소득과 관련해 연금 개혁도 중요하지만 돌봄 인력 수급 체계 구축도 시급하다. 저출생 해결을 위해 국가 재원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어도 역삼각형으로 바뀌고 있는 인구구조를 단기간에 돌려세우기 어려운 현실에서 노후 돌봄 영역에 외국 인력을 투입하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무엇보다 외국인 돌봄 인력 확보가 이미 글로벌 경쟁 영역에 들어섰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지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우리끼리 내부적으로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시간을 허비할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령사회 문제 발생 및 해결에 있어 늘 한국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일본의 경우 이미 외국인 돌봄 인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2019년 외국인 노동력 확보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12개 업종을 ‘특정 기능’ 업종으로 지정하고 이를 위해 입국한 외국인에게는 체류 기간을 최대 5년간 허용하고 있다. 특정 기능 업종 중에서도 돌봄 인력 확보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 동남아 각국에 파견된 후생노동성 직원들의 최우선 임무가 돌봄 인력의 안정적인 수급이다. 대만도 이미 외국인을 돌봄제도 안에 포함시켰다. 돌봄 인력 확보전에 있어 잠재적 경쟁 국가도 있다. 인구구조가 일본·대만·한국을 후행해 변해가고 있는 중국이다. 머뭇대다가는 실기(失期)한다. 현재의 실기는 미래의 재앙이다.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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