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갈림길 美민주주의, "총알 빗나갔어도 분열은 커진다"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총격을 받았다. 워싱턴 D.C. 힐튼호텔에서 점심을 마치고 나오던 레이건을 향해 과대망상증 환자 존 힝클리 주니어가 실탄 6발을 장전한 리볼버 권총으로 저격했다. 6발을 모두 쏘았다. 존 힝클리 주니어는 곧바로 제압됐고, 레이건은 차량으로 옮겨졌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70일째 된 날이었다.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를 비롯해 경호원과 경찰관이 직격 당했고, 레이건은 방탄 리무진 차체에 맞아 튕겨나간 총알에 왼쪽 겨드랑이 부위를 맞았다. 레이건의 상태는 심각했다. 총알은 그의 왼쪽 폐를 뚫고 들어가 심장 가까운 곳에 박혔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레이건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수술실에 있는 의사들을 둘러보며 "여러분 모두가 공화당원이기를 바란다"고 농담을 했다. 그러자 민주당원이었던 한 의사가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 우리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라고 답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아내 낸시에게도 "여보, 총알 피하는 걸 깜빡 잊어먹었네"라고 말했다.
레이건은 죽음의 순간에도 이렇게 유머를 잃지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이는 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레이건의 지지율은 한때 83%까지 치솟았다.
43년 후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암살 시도를 겪었다. "따다다닥"하고 마치 폭죽이 터지는 듯한 연발 총성이 울리자 트럼프는 자신의 오른쪽 귀를 잡고 단상 아래로 몸을 숙였다. 백악관 비밀경호국(SS) 요원들이 연단 위로 황급히 뛰어 올라 그를 감쌌다.
하지만 그는 벌떡 일어서서 주먹을 힘차게 치켜들었다. 오른쪽 귀 부근에선 피가 흘려 내리고 있었다. 유세 참가자들의 비명은 환호로 바뀌었다. 지지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 에스. 에이(U.S.A.)"를 외쳤다.
트럼프가 현장을 떠나는 과정에서도 명장면이 연출됐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뒤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표정은 결연했다. 연단 아래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올려다 보는 각도로 사진이 찍혀졌다. '이오지마의 성조기' 같은 역사적 사진이 탄생했다. 사진은 이번 대선에서 표심을 호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웅적' 사진은 복잡한 감정을 자아낸다. 트럼프는 '테플론'(Teflon·허물에 대한 비판이 통하지 않는 정치인)이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지지자들이 의사당을 습격하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인준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했다. 그들은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그 과정에서 경찰관 1명을 포함해 5명이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미 연방특검은 사태를 선동한 책임을 물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했지만 그는 "마녀 사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지지자들은 겁먹지 않고 오히려 단결했다. 어느새 미국은 정치폭력을 관용하는 사회가 됐다. 미국은 선진 정치문화를 자랑하고 있지만 이제 이중적 면모의 나라로 바뀌었다.
이번 트럼프 암살 시도가 미국 정치에 또 나쁜 영향을 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이 사건이 미국 사회에서 이미 두드러진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총기 암살 시도가 총기 규제 정책을 만드는데 일조하기 보다는 표심을 모으기 위한 '연극적 전술'로 활용된다면 대선은 객관적이고 차분한 토론의 장이 될 수 없다. 국내외 문제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는 커녕 비이성적 대립이 확대될 위험이 큰 것이다. 그가 통합과 반대되는 길을 갈 때 견제할 당내 세력이 존재할지는 의문이다.
로이터통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약 70%가 대선 후 정치 폭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대선 후보들이 국제사회의 기대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 캠페인을 이끌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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