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초연결’이라는 위험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들의 화면이 파랗게 바뀌더니 이내 먹통으로 변했다. 세계 곳곳의 공항에서 PC와 연결된 체크인 카운터에 ‘블루스크린’이 뜨면서 발권과 탑승수속이 중단됐다. 금융기관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입출금과 결제가 불가능해졌고, 슈퍼마켓과 응급실까지 문을 닫는 등 일상 대부분에서 차질이 발생했다. 지난 19일 전 세계를 대혼란에 빠뜨린 ‘죽음의 블루스크린’ 사태다.
먹통 사고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장애가 발생하면서 빚어졌다. MS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서버와 PC에 블루스크린 오류가 터져 나오며 ‘글로벌 IT 대란’이 발생한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IT 장애의 완전 복구에는 몇주가 소요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 피해가 덜했던 것은 주요 기관이나 은행 등이 자체 서버나 클라우드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블루스크린은 달콤하게만 여겨지던 ‘초연결 사회’에서 어느 하나가 삐끗하면, 시스템에 큰 혼란이 올 수 있음을 묵시(默示)한다. 사고 원인이 된 클라우드 시장은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빅테크 기업이 70%를 장악하고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은 격이어서 이번 같은 사태엔 속수무책이다. 특정 소프트웨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전 세계가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도 2년 전 카카오 서비스 먹통으로 일상이 멈춰 서는 경험을 한 바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창조한 ‘초연결 사회’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편리함을 제공한다. 2011년 페이스북이 지구의 다른 곳에 사는 두 사람이 연결되려면 몇 단계가 필요한지 실험을 했더니 4.7명을 거치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고립된 세상으로 되돌아가기 힘들 만큼 ‘초연결’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됐다. 그런 만큼 ‘초연결’이라는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연결 기반의 편리함에만 계속 취해 있다면 재앙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이번 사고가 시스템 장애가 아니라 악의에 찬 테러였다면 어땠을까. 한 번의 공격만으로 전 세계 공항과 병원이 마비되고 일상은 물론 국가의 근간까지도 무너졌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세상에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 시나리오가 더해진 것 같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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