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원금회수 노린 저축銀 '꼼수'에···최대한 빨리 시장가 접근 유도
■경·공매 재입찰 주기 단축
이미 부실사업장 충당금 적립
매각가 조정 여력 충분한데도
가격 높이고 입찰 늦추며 버텨
당국, 최초입찰가 지침도 검토
저축銀 "매수 수요 줄것" 반발
수도권 소재의 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대주단이 최근 사업장 처분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데 모였지만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업장에 내준 대출이 반년 가까이 연체될 정도로 부실해져 일단 공매로 방향을 잡았지만 최저 입찰 가격을 얼마로 할지에 대해 선순위인 시중은행과 후순위인 저축은행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은 “첫 공매인데 적어도 대출 원금 수준으로 최저 입찰가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시중은행은 “그렇게 하면 하나마나한 공매가 될 것”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대주단 관계자는 “신탁사에 공매를 위탁하기 전에 대주단끼리 최저 입찰가를 합의해야 한다”면서 “부실 사업장을 이대로 두기는 어려우니 결국 저축은행 눈높이에 맞춰야 할 텐데 이 조건이라면 거래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21일 금융 당국이 경·공매 재입찰 주기를 기존 석 달에서 한 달로 단축하려는 것은 부실 PF 사업장 정리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당국은 저축은행이 경·공매 최저 입찰가나 입찰 간격 등 세부 조건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시장 가격과 괴리된 조건을 앞세워 사실상 경·공매를 회피하고 있다고 본다.
실제 일부 저축은행은 경·공매 입찰 회차 간격을 늘리는 방식으로 가격 하락 속도를 늦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경·공매는 입찰을 진행한 후 낙찰자가 없으면 최저 입찰가를 낮춰 다시 입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입찰 회차 간 기간이 길어지면 최저 입찰 가격이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어 시장가와 근접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부동산 PF 공매 절차를 준비 중인 한 대주단 관계자는 “선순위 채권자는 매주 입찰을 진행해 부실 PF 사업장을 빨리 정리하자는 입장이지만 후순위 채권자는 4주마다 하자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면서 “최저 입찰가 자체도 높게 잡은 상황에서 입찰마저 더디게 진행되면 가격 조정 폭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국은 경·공매 주기를 기존 석 달에서 한 달로 단축하면 이 같은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이 최저 입찰가를 높게 잡더라도 경·공매가 자주 이뤄지면 그때마다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경·공매 유찰 후 재매각할 때는 최저 입찰가를 더 낮춰야 하기 때문에 간격이 짧으면 가격 하락 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서 시장 가격으로 접근하는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금융 당국은 최초 입찰가가 과도하게 높은 수준으로 책정되지 않도록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대주단이 통상 최초 입찰가를 감정평가액의 120% 수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현실에 맞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시장 상황과 사업장의 사업성 등과 연관돼 있는 만큼 모든 사업장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은 이미 부동산 PF 정상화를 위한 금융사 압박을 강화했다. 이달 11일부터 PF 사업장 평가를 미흡하게 한 2금융권에 대한 현장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금융사들이 지난달 개정된 기준에 따라 제출한 사업장 재평가 결과가 당국의 자체 평가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 곳들이 발견됐다는 게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금융 당국이 이처럼 부실 PF 사업장 처리에 고삐를 죄는 것은 저축은행들이 부실 PF 사업장 처리에 소극적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올 5월 PF 사업성 평가 등급을 개정, 부실 가능성이 큰 사업장은 대출액의 최대 75%를 충당금으로 쌓도록 해 금융사의 손실 흡수 능력을 높여뒀다. 경·공매 시 대출 원금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더라도 이미 충분한 충당금이 적립돼 있는 만큼 적어도 장부상 추가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결국 저축은행이 부실 PF 사업장 매각 시 대출 원금을 고집하는 것은 이미 적립해둔 충당금을 환입하려는 꼼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당국이 경·공매를 밀어붙이니 일단 시늉만 내는 것 아니겠나”라며 “부동산 경기가 반등할 때까지 버텼다가 대출 원금은 물론 쌓아둔 충당금까지 챙기려는 곳들이 제법 있다”고 전했다.
저축은행은 이 같은 금융 당국의 드라이브에 반발하고 있다. 경·공매 회차 간격을 축소하면 매수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계속 유찰되면서 시간이 흐르면 가격이 매달 떨어질 테니 최저 입찰가가 바닥을 치기 직전까지는 잠재 매수자들이 경·공매 시장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논리다. 특히 저축은행중앙회의 표준 규정이 4월 개정돼 연체 PF 채권을 3개월마다 경·공매에 내놓도록 한 지 석 달여 만에 다시 한 달로 단축하는 것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지적이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공매를 대리할 신탁사를 찾고 공매 조건을 논의하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린다”면서 “표준 규정 개정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도 전에 또다시 공매 주기를 좁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공준호 기자 zer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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