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다니기 무서워요”…신림 칼부림 1년, 불안사회 사는 시민들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집단 트라우마 생겨
"심리지원 늘리고 사회 안정감 높여야 해"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김한영 수습기자] “1년이 지났다고 해서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출퇴근길에 그곳을 지나야 하는데 그때마다 불안하죠.”
신림동에서 발생한 이상동기 범죄 1년,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그 사건은 여전히 시민들을 불안 사회에 살게 하고 있다. 연이어 벌어지는 흉기난동, 여기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번지는 살인 예고글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가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사건의 충격을 잊지 못한 사람들은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얼굴과 거리에도 불안을 호소했다. 신림동 주민인 김모(73)씨는 “지하철 계단만 봐도 사건이 떠오르고 너무 안타까워서 근처로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마를 찌푸리던 김씨는 “얼마 안 돼서 둘레길에서 성폭행사건이 벌어졌는데 우리 손자가 산악자전거로 자주 다니던 길이라 더 놀랐다”며 “그 뒤로는 도림천으로 산책도 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범죄를 못 잊은 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8월 ‘분당 흉기난동 사건’을 목격한 이모(25)씨는 “칼에 찔려서 누워있는 사람, 피 흘리는 모습을 봤다”며 “지금도 그 장소 근처로는 절대 다니지 않고 돌아간다”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범행이 이뤄진 건물에 있던 정수진(25)씨는 “일하고 있는데 ‘피가 난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정신 없이 뛰어갔다”며 “지금은 경찰이 돌아다니니까 괜찮다가도 그런 일이 또 있을까 싶어서 계속 생각난다”고 했다.
사건 현장과 무관한 지역도 불안에 떠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둡고 으슥한 길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떤 범죄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생각 탓이다. 인천에 사는 백모(40)씨는 “작년 그런 사건이 있은 후 행동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사람을 마주치면 경계하게 된다”며 “내가 언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섬뜩할 때가 많다”고 했다.
무방비로 노출돼 더 힘든 범죄·사고…“트라우마 관리 강화해야”
지난해 12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전국 일반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국민 정신건강 트랜드 인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의 정신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소는 ‘조선 사건’과 같은 이상동기 범죄였다. 이러한 사건이 반복될 경우 일반 시민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가 범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건사고는 사회 불안과 집단 트라우마로 남기 쉽다”며 “직접 경험뿐 아니라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으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권역별로 마음치료를 돕는 트라우마센터가 있는데 접근성과 지원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흉기 난동뿐 아니라 얼마 전 시청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도 매우 일상적인 공간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발생해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며 “비극적인 일이어도 벌어진 이유를 이해하면 회복할 수 있는데 (이상동기 범죄는) 소화되기 어려워서 트라우마로 잘 남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심리적·물질적으로 사건 이후 안정감을 느껴야 회복할 수 있다”며 “심리적 안정감을 기를 수 있도록 사건·사고 직후 사회의 작동 방식과 수습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2차 가해를 허용하지 않는 규범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영민 (yml122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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