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9년 만에 사임
“기구와 나에게 정치적 공격 끊임없어
경제적 불평등, 난민·이민 탓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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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난민 문제의 인도주의적 해결을 촉구해온 배우 정우성씨가 지난 3일 친선대사직을 사임했다. 2014년 5월 유엔난민기구 아시아태평양 지역 명예사절로 임명된 지 10년 만이고, 이듬해부터 친선대사직을 수행한 지 9년 만에 내린 결정이다.
정씨는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21과 만나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와 저의 이미지가 너무 달라붙어 굳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됐다”며 “기구와 나에게 끊임없이 정치적인 공격이 가해져 ‘정우성이 정치적인 이유로 이 일을 하고 있다’거나 하는 다른 의미들을 얹으려 하기에 나와 기구 모두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친선대사 사임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지난 10년 동안 유엔난민기구에서 활동하며 남수단공화국 실향민(2015년),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2016년),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2017년), 제주도의 예멘 난민(2018년), 콜롬비아의 베네수엘라 난민(2024년) 등 분쟁 지역과 난민촌 10여 곳을 방문하고, 현장 상황을 국내에 전했다. 그는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해마다 세계 곳곳의 난민 캠프를 다니며 난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 막연했던 난민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가 뚜렷해진 것 같다”며 “난민 문제는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난민 문제는 결국 분쟁과 폭력, 전쟁이 원인이다. 난민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얼마나 인간의 삶을 황폐하지 만드는지를 볼 수 있고 나아가 평화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정씨의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은 2018년 예멘 난민 500여 명이 한국에 오면서 큰 변곡점을 맞았다. 2018년 6월20일 세계난민의날을 맞아 ‘예멘 난민 신청자를 강제 송환하면 안 된다’고 밝힌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입장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가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거센 비판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를 향해 “위선자”라거나 “정우성 돈으로 난민을 보호하라”라는 날 선 목소리가 쏟아졌다.
당시 난민을 비난하는 기사 댓글과 게시글을 모두 읽었다는 정씨는 “한국 사회를 보면, 제주 4·3사건, 세월호 등 여러 사회적 참사의 원인과 피해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한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 시민들이 타인의 고통에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을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며 “지역사회에 있는 소외 계층 사람들에게 난민이 반가운 손님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극우 정치 진영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문제의 원인을 난민과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예멘 난민이 한국에 들어온 지 6년이 지났지만,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그 정도 규모의 난민을 수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입증된 것”이라며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를 떠나서 내륙으로 들어와 생활했지만, 일각에서 우려한 강력범죄 등은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 성범죄가 늘어나고, 종교 갈등이 생길 거라는 불안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런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정씨는 “다시 배우로 돌아가서 배우로 존재할 것”이라며 “제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 문제나 나눠야 할 이야기가 아직 많기에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겨레와 노회찬재단과 함께 연재해 온 ‘6411의 목소리’를 묶어서 펴낸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창비)에 “정치인 노회찬이 응시해온 ‘존재하되 우리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접 쓴 이야기를 통해 정치가 바라봐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는 추천사를 남기기도 했다.
정씨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마지막 한마디를 남겨 달라는 부탁에 “난민은 특정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신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인데, 우리 사회는 그 단어의 의미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난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직시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사회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씨 인터뷰 전문은 한겨레21(제1523호)에서 볼 수 있다.
이재호 한겨레21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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