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혼제 찾는 80대 딸의 상흔…“나가 아니면 누가 이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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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왐수다. 나가 안 오면 누가 올 사람이 이수과. 걷지 못할 때까지는 와삽주(와야지요). 한 해에 한 번만 오지 않고 몇번씩 찾아댕깁니께(찾아옵니다)."
20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23회 제주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에서 만난 김정옥(81·제주시 한림읍)씨는 아버지 '김학수'의 빛바랜 표석 앞에 5개의 술잔과 제물을 놓고 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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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 폭염 속 개최
“해마다 왐수다. 나가 안 오면 누가 올 사람이 이수과. 걷지 못할 때까지는 와삽주(와야지요). 한 해에 한 번만 오지 않고 몇번씩 찾아댕깁니께(찾아옵니다).”
20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23회 제주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에서 만난 김정옥(81·제주시 한림읍)씨는 아버지 ‘김학수’의 빛바랜 표석 앞에 5개의 술잔과 제물을 놓고 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4·3 때 안덕면 서광서리에 살던 김씨는 당시 6살이었지만 그때의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4·3 이후 한림리로 이주해 평생 살아온 김씨는 같은 마을 친구들과 왔다고 했다. 친구들 모두 4·3 때 부모나 형제자매, 친인척들을 잃거나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정성을 다해 아버지의 표석 앞에 절을 한 김씨는 제물들을 조금씩 떼어내 술잔에 담고 주변 나무 주위에 놓고 다시 절을 했다.
한림읍 상명리에서 온 홍영희(79)씨도 해마다 진혼제와 추념식이 열릴 때면 4·3평화공원을 찾아 마음의 안식을 꾀한다. 홍씨는 아버지는 4·3 때 희생돼 위패봉안실에 모셨고, 제주농업학교 학생이던 20살 차이나는 큰오빠는 당시 행방불명됐다고 했다.
“다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큰오빠가 농업학교에서 반장을 했다는데 어느 날 총을 든 경찰 2명이 복도 양쪽으로 나타나 잡아갔다고 합니다. 그 뒤로 어머니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홍씨는 이날 행방불명인 표석에 있는 큰오빠의 비석에서 제를 지낸 뒤 위패봉안실에 모셔있는 아버지의 위패로 걸음을 옮겼다.
4천여기의 4·3행방불명인 표석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족들이 부모 형제의 표석을 찾아 제물을 꺼내놓고 절을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제주에는 다른 지방의 호우와는 관계없이 연일 폭염이 계속된 날씨 탓인지 이날도 곳곳에 부채를 꺼내 든 유족들도 보였다.
진혼제는 이날 오전 10시 유족 등 600여명이 무더위 속에서도 자리를 가득 메운 채 봉행됐다. 오영훈 제주지사와 이상봉 도의장, 4·3사건 당시 수형자들에 대한 재심을 맡은 제주4·3사건재심직권재심합동수행단 강종헌 단장 등도 참석했다.
양성홍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이날 주제사를 통해 “4·3 희생자에 대한 개별보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유족들은 끝까지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영훈 지사는 “7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한 행방불명 희생자들은 제주의 아픔이자, 대한민국 현대사의 슬픔이다”며 “제주도정은 이름 없이 스러져간 4·3 영령들이 한 분도 소외되지 않도록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 섬 곳곳에 존재하는 아픔을 충분히 추모할 수 있도록 무명 희생자와 행방불명 희생자의 추모행사 격을 높이고 예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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