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트럼프 지지가 ‘트렌드’…왜 우클릭 했나?
손재권 | 더밀크 대표
“도시에는 질서가 필요하고, 국경에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불타는 세상에 질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지난 15일(현지시각) 미 공화당 전당대회. 데이비드 색스 크래프트밴처스 대표가 무대에 올라 트럼프 지지 연설을 했다.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와 메신저 ‘야머’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그는 이번 대선 초기부터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앞장서 지지하고 선거 자금을 모금했다. 6년 전인 2018년 대선 때는 저서 ‘제로 투 원’으로 유명한 피터 틸이 실리콘밸리 내 유력 벤처캐피털리스트와 기업인 중에서 외롭게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으나 올해 대선에서는 ‘트렌드’가 됐다.
실리콘밸리는 정치적으로 민주당 텃밭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감시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며 국경의 자유로운 이동이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촉진한다고 믿고 있다. 그동안 엄격한 이민정책에 반대했고 트럼프의 기후변화 부정과 환경 규제 완화도 반대했다. 정부(워싱턴)나 대형 자본(월스트리트)과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규제와 거리가 멀고 모험자본이 활성화돼 있는 곳이다.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주지사, 상하원 의원, 시장, 교육위원까지 선출직은 민주당 간판만 내걸면 당선될 정도다.
그러나 2024년 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 특히 트럼프 후보와 조 바이든 대통령의 티브이(TV) 토론과 트럼프 총격 사건 이후 급격히 우클릭 하는 양상이다. 일론 머스크뿐 아니라 마크 앤드리슨, 벤 호로위츠 등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전폭 지지를 선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실리콘밸리의 우클릭화는 시사점이 크다.
첫째, 바이든 대통령이 인공지능(AI)이나 암호화폐(크립토) 등 미래 산업에 규제 일변도 정책을 펴고, 기업과 개인에 대해 과한 세금을 매기는 게 산업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있다. 실제 마크 앤드리슨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의 대표는 “기술 산업은 혁신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 규제 완화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 방식이 에이아이와 크립토 등 신흥 기술의 지속적인 성장에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과잉 규제가 의료, 금융, 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 혁명을 일으킬 에이아이 기술의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샌프란시스코의 안전 문제다.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와 마약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마약 과다 복용과 노숙자 증가가 생활에 위협을 준다. 2022년에는 647명이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으며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인구는 8천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마약 중독 문제를 겪고 있다. 시민들은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데 지역 정치인들은 안전 문제보다 성 정체성 등 정치적 선명성을 드러내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불만이다.
셋째,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이 ‘도전자’가 아니라 도전을 막고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구글(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은 예외 없이 반독점 혐의로 정부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해체’까지 언급되지만 막대한 로비 자금을 동원해 맞서고 있기 때문에 실제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쉽지 않다. 생성 에이아이 기술은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이 빅테크 기업을 상대로 단기간에 승리하기는 어렵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비즈니스 지키기에 나서면서 자연스레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나 실리콘밸리 지역의 전체 표심이 ‘우클릭 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실리콘밸리 기업과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것도 결국 ‘시장 원리’ 때문이다. 그 원리는 바로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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