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와인 수입사 대표 "침체기가 아니라 축적기, 레벨업 될 것"
"와인 시장이 전체적으로 줄어 들었지만 다시 올라가기 위한 축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소비 양극화가 나타날 거라고 보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시장은 또 레벨업이 될 겁니다."
이권휴(64) 와인나라 대표는지난 18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아영FBC 본사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침체기를 겪는 와인 시장이 3~5년 내 회복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근거는 두 가지다.
먼저 와인 수입량은 줄었지만, 수익액 감소폭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일본·싱가포르 등 와인 성숙기 시장에서 나타나는 '시그널(신호)'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시그널의 핵심 키워드는 '화이트와인'과 '여성 고객'이다. 저렴한 레드와인 중심에서 화이트와인, 스파클링 등 다양한 와인 수요가 늘고 소비층도 여성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와인 시장의 성숙기로 접어들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에서 분위기를 즐기는 문화로 변화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이 같은 시장의 변화를 포착하고 오히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이 대표는 코로나19(COVID-19)가 터진 직후인 2020년부터 국내 대표 와인유통 업체인 '와인나라'를 이끌고 있다. 와인나라는 1세대 수입 주류 업체인 아영FBC의 와인 리테일(유통) 브랜드다. 1987년 아영FBC와 함께 설립돼 올해로 창립 37년째다. 전국에 11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국내 첫 와인 구매예약 시스템을 도입한 온라인몰 '와인나라닷컴'도 운영 중이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코로나19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와인 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올해 상황은 어떤가.
▶수입된 와인 중에서 팔리지 않는 재고에, 추가로 들어오는 물량까지 더해지면서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멀리서 바라보면 와인 시장은 계속 우상향하지만 자세히 보면 침체되는 시기가 있다. 한국 전체로 수입 물량과 금액, 이 두 가지 수치를 보면 2022~2023년에 최고점을 찍고 지금 침체기를 겪고 있다.
-와인 수입 시장은 대형 4개사가 주도하고 있지만 중소형 수입사도 많다. 구조조정이 이뤄질까
▶당장 재고를 처리하기 어려운 수입사들이 많은데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이다. 주로 3만~5만원 대 중·저가 와인을 수입한 곳들이 문제가 될 텐데 물량 밀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환율 영향도 있지만 와인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좀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와 있어 유통사들의 가격 인하 요구가 클 것이다. 재고처리를 위해 수입가보다 낮게 팔아야 할 수도 있다. 한편 와인 시장엔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다. 초저가와 프리미엄 시장이 나뉘고, 수입사별로 잡으려는 시장이 다를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시장은 레벨업이 될 것이다.
-와인나라와 아영FBC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이유는 무엇인가
▶호황기에 관성적으로 수입하던 타사와 달리 2022년말, 지난해 1분기부터 수입물량을 굉장히 관리했다. 코로나 이전부터 시장이 바뀔 수 있으니 와인을 주력으로 하되 다른 술들도 같이 다루는 종합 주류회사를 지향했다. 덕분에 와인 뿐 아니라 위스키와 데킬라, 럼과 중국 백주까지 주종 포트폴리오(상품군)가 다양한 것도 타격이 적은 이유다. 또 편의점·마트와 같은 오프마켓(B2C) 이외에 식당·주점 등 온마켓(B2B) 유통망을 갖고 있다는 점도 실적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됐다.
-코로나 시기 폭발했던 와인시장이 최근엔 어떻게 달라졌나
▶코로나 시기 와인시장에 들어왔던 소비자들 일부는 다른 주종으로 이탈했지만 원래 와인을 좋아하던 소비층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여기에 와인 시장의 확장 국면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 굉장히 유의미한 게 화이트와인과 스파클링에 대한 수요가 커진다는 것이다. 와인나라에서 취급하는 화이트 와인도 과거에는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매출도 크지 않았는데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 등 한국보다 와인시장 규모가 큰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입맛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필요한 아이템으로 와인을 생각하는 것이다.
-와인나라는 이 같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기회라고 보고 지난해 점포를 공격적으로 늘렸다. 이전까지 5개였는데 지난해만 5개를 늘렸고 올해 초에 하나를 더 오픈해 11개가 됐다. 와인과 국가란 영문자를 합쳐 '와인네이션'이란 개념을 만들어서 매장별로 제품군의 차별화를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 서래마을점은 저희가 취급하는 이탈리아의 모든 와인을 판매한다. 타사 제품도 30%가량 배치하고 있어 이탈리아 와인의 모든 것을 여기서 원스톱으로 만날 수 있다. 성수점은 미국 와인의 모든 것, 이런식이다.
-변화에 대응하면서 기존과 달라진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가
▶매장을 늘리고, 점원을 늘려서 물량을 밀어내는 식은 스마트하지 못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하나의 키워드로 보면 즐거움이다. 고객들에게 '펀(Fun, 재미)'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 매장마다 똑같은 제품에, 어딜 가도 차이가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냐. 그래서 점포를 차별화했다. 또 소비자들에게 와인에 대한 경험을 확대하기 위해서 외식 매장 6곳을 내고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브 서울과 무드 서울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예약 오픈과 동시에 마감된다. 여기서 시음행사도 자주 하는데 최대 하루 600명정도 60여 종의 와인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행사를 2만5000원이면 참여할 수 있다. 돈 벌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경험을 제공하고 만족감을 주기 위한 것이다. 와인 애호가를 대상으로 10명이나 30~40명 이정도 규모의 시음회도 연다. 평소에는 맛보기 어려운 고가의 와인이나, 같은 제품의 생산연도별 상품도 선보인다.
-주류 시장에서 온라인 판매 허용이 이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 온라인 주류 판매는 반쪽짜리다. 현행법상 주류는 온라인으로 결제까지 할 수 있지만 픽업은 오프라인에서 직접 해야 된다. 배송까지 허용하는 것이 소비자들에 편리하기 때문에 이 방향으로 갈 것이고 시기의 문제라고 본다. 다만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이 직접 와인을 들여와 자금력으로 밀어 붙이면 와인 도매상들의 타격이 클 것이다. 그들의 역할이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기회보다는 오히려 위기라고 본다.
-와인 수입사로 온라인 판매에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온라인 시장이 열렸을 때도 우리와 관계를 가져갈 고객들을 미리 만들어 놔야 한다. 온라인 회원수 DB(데이터베이스)가 10만 정도이고 활성화 된 고객이 절반 정도다. 이분들을 좀 더 활성화시켜야 되겠다고 본다. 고객들에게 시음회나 할인 행사, 마일리지 같은 걸 제공해서 저희를 떠났을때 잃는 것이 더 크도록 혜택을 제공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야 어느 정도 방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쪽 사업은 이익이 크지 않더라도 시작을 하는 편이다.
-또 다른 정책 이슈는 무엇이 있나
▶아무래도 주세 제도다. 와인이 종량세로 가는 이슈는 굉장히 큰 변화가 될 것 같다. 해외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종가세를 유지하는 곳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에서도 1~2개 국가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대담=김진형 산업2부장 jhkim@mt.co.kr 정리=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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